깨달음에서 변혁은 시작된다. 커피로 가꾸는 의미 있는 인생

콜롬비아 우일라(Huila) 지역에 거점을 둔 커피 생산자 협동조합 카데피우일라(Cadefihuila). 1963년에 설립된 이 조합은 콜롬비아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역사와 규모를 자랑하며, 현재 약 3,500명의 생산자가 소속되어 있다.
‘생산자에게 최대한 가까운 존재로 있는 것’을 기본 이념으로 하는 이 조합에서는 현재 38곳의 매입 거점을 두고 있다. 가장 먼 농장에서도 1시간 정도면 가장 가까운 거점까지 접근할 수 있는 체제를 정비해 왔다. 각 거점에 인력을 배치해야 하기에 운영 비용은 들지만, 연간 생산량이 1톤에 못 미치는 소규모 생산자들도 커피 생산을 이어갈 수 있는 구조 마련을 우선하고 있다.
그 밖에 무이자 융자, 재배 및 정제 관련 연수, 기술 지도를 실시하는 등 조직 운영에 필요한 경비를 제외하고, 이익은 모두 생산자에게 환원하고 있다.

카데피우일라가 하나의 전환점을 맞이한 것은 2010년 무렵이었다. 그때까지는 모든 커피를 FNC(콜롬비아 커피 생산자 연합회)에 판매하고 있었으나 스페셜티 커피 시장의 성장과 함께 많은 수출업자들이 시장에 진입하게 되었다. 고품질 로트를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FNC의 경쟁력은 점차 약화되었다. 매입 가격도 하락해 조합으로서도 ‘직접 고객을 찾아 해외 시장에 진출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직면해 있었다.

그 역할을 맡을 인재로서 자진해서 나선 것이 2021년에 일하기 시작한 크리스티안이다. 자신의 농장을 소유한 생산자이기도 한 그는 조합에 소속된 생산자들과 전 세계의 바이어를 연결하는 매치메이커(중개인) 역할을 맡고 있다.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한 장기적인 파트너십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전년과 동일한 커피를 재주문하는 고객사도 몇 곳 생겼다.
그렇긴 하지만 협동조합이 취급하는 커피 중 수출되는 것은 약 5%이다. 84점 이상의 스페셜티가 전체의 약 70%를 차지하는 잠재력을 고려하면 아직도 가능성이 잠들어 있는 상태다. ‘최종적으로는 모든 생산자와 바이어를 연결하고 싶다’라는 목표를 가진 크리스티안. 그에게 지금의 일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선택지를 몰랐을 뿐이었다
콜롬비아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커피 농가는 ‘수익이 나지 않는 일’로 여겨져 젊은이들로부터 기피되어 왔다. 우일라주 피탈리토(Pitalito)에서 대대로 커피 농사를 지어온 집안에서 태어나 자란 크리스티안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에는 건조 설비도 없어서 웨트 파치먼트(Wet Parchment) 상태 그대로 중간 업자에게 판매했다. 그런 저부가가치 모델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기에 할아버지는 ‘커피에 관련된 사람들은 가난하다. 항상 가격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라며 자주 토로하곤 했다. 10대가 될 무렵, 크리스티안에게는 커피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완전히 자리 잡았고, 커피는 가장 먼저 선택지에서 제외되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런 그가 선택한 분야는 철학이었다. 장학금 제도를 활용해 이스라엘과 이탈리아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에는 2년 동안 콜롬비아의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쳤고, 이후 통계학을 배우기 위해 미국 시카고로 건너갔다.
크리스티안의 운명을 바꾼 것은 시카고에 거점을 둔 인텔리젠시아 커피(Intelligentsia Coffee) 오너의 딸인 줄리와의 만남이었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던 중, 인텔리젠시아 커피가 고향인 피탈리토에서 생산된 커피를 들여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시험 삼아 가족이 생산한 커피 샘플을 보냈더니, 시장 가격의 두 배에 구매해 주었다. 그때 처음으로 크리스티안은 커머셜 커피 외에도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17년 무렵의 일이었다.
이후 크리스티안은 그녀를 통해 로스팅과 추출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커피 비즈니스에 참여하고 싶다는 열망이 싹트는 건 시간문제였다.

“이유는 두 가지예요. 하나는 자신의 뿌리와 고향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또 하나는 업계 안에 존경할 수 있는 사람들과 영감을 주는 이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특히 기억에 남는 게 2019년에 보스턴에서 열린 스페셜티 커피 엑스포(Specialty Coffee Expo)예요. 국적, 문화를 불문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 배우고, 함께 성장하려고 했어요. 정말 멋진 업계구나 하고 느꼈던 적도 있어서 점점 더 커피에 빠져들게 되었어요.”

비즈니스에 앞서 인간관계
크리스티안이 커피의 세계에 깊이 들어가면서 마주한 것은 소규모 생산자들과 관련된 과제였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커피를 키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노력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자신의 커피를 누구에게 어떻게 판매해야 좋을지, 비즈니스에 대한 지식도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그때 깨달았어요. 소규모 생산자와 바이어를 연결할 수 있다면, 더 공정한 가격에 커피를 판매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만 일하는 상태에서 벗어나 자신의 성장과 가족의 미래를 위해서도 돈을 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고 말이에요.

실제로 생산자들도 향상심이 있어요. 지식과 기술을 배우고 싶어 하고, 자신들의 커피를 적정한 가격에 판매하는 방법을 알고 싶어 하며,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어 하는데, 그 방법을 알지 못하고 있죠. 저 같은 경우에는 철학을 공부한 경험이 그런 니즈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어요.
철학을 통해 저는 인간의 욕구와 나약함, 행동의 동기를 깊이 이해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었어요. 그건 생산자이든 바이어이든 눈앞에 있는 사람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자세히 이해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어요.
반대로 말하자면, 너무 표면적인 것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거예요. 품질이라는 개념 하나만 보더라도 단순히 커핑(Cupping) 점수로만 평가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트레이서빌리티(Traceability)나 시각적, 이야기적인 가치가 갖춰져야 비로소 매력적인 커피가 돼요.
실제로 커피 업계는 단순한 매매만으로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먼저 신뢰 관계와 우정을 쌓은 다음에 비즈니스를 시작한다는 생각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어요. 만약 트러블이나 실수가 발생하더라도 신뢰가 있으면 극복할 수 있고, 문제도 원활하게 해결할 수 있거든요.”

의식이 바뀌면 행동도 바뀐다
철학의 목적 중 하나는 사물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데 있다. 크리스티안이 민간 커피 수출 기업에서 카데피우일라로 이직한 것도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경험과 기술을 살려 우일라의 커피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고향의 생산자들에게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이미지가 떠올랐던 것이다.
이직 후, 크리스티안은 먼저 성공 사례를 만들기 위해 한 명의 생산자에게 집중하여 하나의 마이크로 로트를 만들어 판매했다. 생산자가 정제 및 발효에 대해 배울 수 있도록 협동조합의 자금만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했으며, 바이어와의 관계 형성에 큰 장벽이 되는 언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젊은 생산자들을 대상으로 주 1회, 1시간씩 무료 영어 교실을 열고 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생산자와 업계, 나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떻게 하면 거기에 더 가치를 더할 수 있을까? 저는 늘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살아가고 있어요. 그래서 커피 생산자의 자녀들이 대학에 진학하거나, 바리스타나 커핑 강좌를 수강하며 부모 세대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기쁘답니다.”

공공적인 성격도 지닌 협동조합의 중심에는 사업성과 사회성을 양립하는 자세가 있다. 예를 들어 농장 내에 샘물을 가지고 있는 생산자 그룹과 연계해 샘물을 보존하면서 활용하는 활동이 그 한 예이다. 이 활동에 공감하는 바이어들이 커피 가격에 약간의 추가 비용을 얹어 구매하면, 그 수익이 샘물 보존으로도 이어지는 구조이다.
“제가 평소에 의식하고 있는 건 생산자들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이에요. 사물에서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먼저 그곳에 의식을 기울일 필요가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10년 정도 전까지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농약과 제초제를 많이 사용하는 농법도 틀린 건 아니지만, 지속 가능한 방법이냐고 되묻는다면 답은 달라지죠.
환경에만 국한된 게 아니에요. 매일 내리는 모든 선택에 대해 더 의식하게 된다면 사람은 더 나은 판단을 할 수 있게 돼요. 그런 한 사람 한 사람의 주체적인 선택이 커뮤니티의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점에 저는 큰 의미와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