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지만 착실하게. 자연스러운 성장이 만들어내는 지속 가능성

리스크 관리와 포트폴리오 전략을 생각할 때,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은 비즈니스의 철칙으로 여겨진다. 단일한 공급처나 판로에 의존하면 시장의 변동이나 예기치 못한 문제로 인해 사업 지속에 리스크가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이론을 뒤집고 있는 사람이 탄자니아 북부 올데아니(Oldeani)의 고지대(해발 1,850~1,950m)에서 아카시아 힐스(Acacia Hills)와 템보 템보(Tembo Tembo) 두 곳의 농장을 운영하는 레옹(Leon)이다. TYPICA와 거래를 시작한 지 3, 4년 차인 2023, 2024년은 생산량의 약 60%를 TYPICA를 통해 판매했다. 그중에서도 게이샤(Geisha)와 파카마라(Pacamara) 등 단가가 높은 품종의 비중은 더욱 높다. 때문에 ‘TYPICA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레옹은 개의치 않는다.

“예전에는 컨테이너 단위로 커피를 구매해 줄 로스터와 바이어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어요. 하지만 TYPICA와 만나고 나서는 비록 적은 양이라도 고품질의 커피를 전 세계의 로스터들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되었죠. 지금은 SNS의 시대라서 거의 매일 누군가가 우리 커피를 로스팅하고, 추출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그게 정말 기뻐요.
TYPICA 사람들은 정말 성실해서 이 사람들이라면 절대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들어요. 함께 교류하다 보면 그냥 기분이 좋아요. 무엇을 물어봐도 진지하게 답해 주고, 그들도 제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해 줘요. 우리 사이에 비밀은 전혀 없어요.
시세가 올랐을 때일수록 커피를 사고 싶어 하는 사람은 늘어나지만, 그들이 어떤 조건을 제시하더라도 TYPICA를 최우선으로 하는 자세를 바꿀 생각은 없어요. 물론 TYPICA의 니즈에 맞지 않아 팔리지 않고 남게 되었을 때는 직접 판매처를 찾아야 하겠지만요.”

스페셜티가 살아남는 길이었다
‘백인계 탄자니아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레옹은 탄자니아 북부의 킬리만자로 산기슭에 있는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다. 할아버지는 그리스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1920년에 커피 농장을 시작했다. 아버지는 지역에서 개업의로 일하면서 겸업으로 커피 농장도 운영했다. 수확철이 되면 오후에는 농장으로 향해 땀을 흘리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이윽고 레옹은 영국으로 건너가 대학을 졸업한 뒤 약사로 일했다. 하지만 1996년, 29세가 되던 해에 고향에서 가족을 이루고 싶다는 생각으로 영국에서 만난 아내 아이딘(Aideen)과 함께 탄자니아로 돌아와 가업인 커피 농장 운영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농장은 고도가 낮은 지역에 있었고, 재배하고 있던 것은 커머셜 커피뿐이었다. 시장 가격의 변동이 심해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기는 어려웠다. 효율화, 기계화가 진행된 브라질과 베트남 등에 가격으로 맞설 가망도 없었다.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생존 전략을 고민하던 중 레옹이 도달한 답은 스페셜티 커피였다.

2005년, 동아프리카에서 연 1회 열리는 커피 전시회(현재의 AFCA, African Fine Coffees Association)에 참가한 레옹은 그곳에서 중요한 인물과 만난다. 미국에서 포틀랜드 커피 로스터스 (Portland Coffee Roasters)를 경영하는 마크 스텔(Mark Stell)이다.
그로부터 ‘올데아니의 커피는 정말 훌륭했다. 지금까지 마셔본 탄자니아의 커피 중 가장 맛있었다’라는 말을 들은 레옹은 2007년에 현재의 땅을 구매하고 스페셜티 커피 생산을 시작했다. ‘이곳의 토양은 고품질 커피 생산에 적합하다’라는 연구자의 말도 레옹의 등을 밀어주었다.
뜻밖에도 2003년에 탄자니아 정부가 발표한 커피 수출 자유화 정책은 호재가 되었다. 특정 조건을 충족한 생산자와 기업은 정부의 경매를 거치지 않고, 해외 바이어나 로스터와 직접 거래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레옹이 올데아니에서 손에 넣은 농지는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어 황폐해져 있었다. 레옹은 먼저 땅을 정비하는 데 착수했고, 다양한 시장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국내에서 전통적으로 재배되어 온 켄트(Kent)뿐만 아니라 게이샤, 파카마라, SL28 등을 심기 시작했다.
“농장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1년 차에는 겨우 몇 킬로그램밖에 수확하지 못했어요. 그럼에도 마크가 전량을 구매해 줘서 정말 큰 도움이 되었죠. 이후 생산량이 늘어난 뒤에도 계속 그들이 구매해 주며 지원해 주었지만, 이렇게 가면 리스크가 크다고 느껴져 스스로 다른 판매처도 찾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레옹이 시작한 것이 지역에서 개최하는 초청자 한정 커핑 이벤트였다. 바이어들이 직접 커피를 시음할 수 있도록 하여 새로운 거래처를 개척하려는 시도였다. 어느 정도 성과를 얻었지만, 초대할 수 있는 인원에는 한계가 있고 개최에도 비용이 드는 점이 단점이었다. 인지도를 더 높이기 위해 2020년에는 ACE(The Alliance for Coffee Excellence)가 주최하는 프라이빗 경매에 참가했다. 그게 TYPICA와의 만남을 불러왔다.

농장은 이른바 오픈 소스다
TYPICA를 통해 아카시아 힐스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이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이 펼쳐지고 있다.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살던 중국인 여성이 현재 인턴으로 반년째 농장에 머물고 있는 것이 그 예이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배우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농장을 방문하는 일도 적지 않다.
“처음부터 마스터플랜을 그리던 것도 아니었고, 비즈니스 서적을 읽으며 치밀하게 사업 계획을 짠 적도 없어요. 식물이 자연스럽게 싹을 틔우고 자라듯 여러 가지 행운이 따르면서 조금씩 성장해 온 느낌이에요.
물론 잠재력을 믿고 이 농장을 매입하긴 했지만, 잠재력을 지닌 곳은 세상에 수없이 많아요. 하지만 잘되지 않거나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그런 의미에서는 어디서 누구와 만나고,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느냐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게 뜻밖의 행운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도 꾸준히 노력해 왔고, 배경과 흐름도 있죠. 우리는 미디어에도 나오지 않고, SNS에서 화려하게 홍보하지도 않아요. 그저 묵묵히 해야 할 일을 계속해 왔을 뿐인데, 그래도 제대로 봐 주는 사람들은 있고, 관심을 가지고 연락을 주시더라고요.
제가 항상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농장의 오픈 소스화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쌓아온 지식과 경험, 성공의 비결이 있다면 같은 업계 사람들과 기꺼이 공유하고 싶어요. 기업 비밀은 전혀 없기 때문에 질문이 있으면 최선을 다해 답해 드리고, 방문하고 싶은 사람은 환영해요. 방법을 배우고 싶으면 얼마든지 배워가셔도 괜찮아요.
예를 들어 우리는 남들보다 먼저 대형 야생동물(※)의 침입을 막기 위해 전기 울타리를 농장 주위에 설치했는데, 지금은 주변의 많은 농장들이 같은 방식으로 하고 있어요. 그건 우리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해요.” ※농장에 접해 있는 응고롱고로 자연보호 구역에는 코끼리와 버펄로가 서식하고 있다.

옳은 일을 계속하면 된다
사업이 순조롭게 성장하고 있는 현재, 레옹은 커피 재배 구역을 50% 정도 확대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병행하여 자사에서 일하는 매니저들의 주거 공간을 부지 내에 건설하는 등 수익 대부분을 투자에 돌리고 있다.
“단순히 규모를 키우고 싶은 게 아니에요. 설령 제가 없더라도 자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안정적인 사업 기반을 만들고 싶어요. 50년 후, 100년 후에도 자연환경이 보존되고, 지역 주민들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농장이었으면 좋겠거든요. 그래서 이번에 확장할 땅을 포함해 전체 면적의 40% 정도는 가능한 한 자연 그대로 남겨둘 생각이에요. 경제 합리성을 우선시해서 생물다양성을 해치는 일은 하고 싶지 않거든요.

사람들한테는 ‘잘 되고 있다면 다른 농장을 사는 게 어때?’라는 권유를 받을 때도 있지만, 저는 규모에는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않아요. 오히려 작더라도 세밀하게 관리되고, 완성도가 높은 쪽이 좋습니다. 지금 잘 되고 있는데, 스트레스를 주며 성장을 추구해야 할지 고민이 될 때도 있어요. 어쨌든 느리더라도 착실하게 성장해 나가는 게 저희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예를 들자면 농장의 새로운 구획에서 커피나무가 천천히 자라며 풍경이 조금씩 변해가죠. 그 모습을 보면 조용한 만족감이 밀려와요. 다음 세대를 위한 기반을 쌓아가고 있다는 실감이 들거든요. 매일 우직하게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계속하다 보면, 어느 날 문득 나도 뭔가를 이뤄냈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단기적인 이익 추구보다는 장기적인 기업 가치의 향상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지향하는 경영을 ‘연륜 경영’이라고 부른다. 레옹이 농장을 구매한 지 18년이 되었다. 처음에는 7명이었던 직원이 150명으로 늘었다. 커피 생산량도 10배 정도 증가했다. 장기적으로 보면 그 성장세가 확실하다.
“탄자니아는 교육 수준이 낮고, 사회 보장과 같은 안전망이 거의 없어요. 그래서 고용을 창출하는 것 자체에 큰 의미가 있어요. 앞으로 사업을 성장시켜서 300명 규모까지 직원을 늘릴 수 있다면 멋질 거 같아요. 탄자니아처럼 격차가 큰 나라에서 혜택을 받은 입장에 있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삶을 지탱하는 것은 하나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