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인생의 경영자. “본성에 대한 해방”을 목표로 하는 것

카사이 류야

2024년 11월 3일, 카사이 류야가 TYPICA의 신임 사장에 취임했다. 카사이는 1999년 오사카대학을 졸업한 후 상장 전 카탈로그 통신판매 업체인 펠리시모에 입사해 신규 사업 개발과 사업 제휴 등을 담당했다. 그리고 컨설팅 자회사, EC 자회사, 물류 자회사 등의 대표직을 역임했다.

카사이는 '사업 활동을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있으며, 그 활동의 일환으로 2008년 PEACE BY PEACE COTTON PROJECT(이하 PBP)를 설립하고 2017년에 재단법인으로 전환했다. 인도의 면화 재배와 관련된 인권과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도산 오가닉 코튼 제품을 대형 섬유상사와 의류업체를 통해 일본 소비자들에게 판매하고 있다. 매출의 일부를 프로젝트 기금으로 활용하여 현지에 유기농법을 보급하고, 농가의 빈곤을 해소해 나가고 있으며 아이들의 교육을 지원하는 순환형 사업을 일구어 왔다.

TYPICA와 가까운 접근 방식으로 면화 산업이 안고 있는 사회 문제의 해결에 도전해 온 카사이가 TYPICA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어느새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다

2024년 2월, 25년간 근무한 펠리시모에서 퇴임 한 카사이는 자신의 회사를 설립했다. 그 후 인생을 돌아보고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기 위해 세계일주 여행을 떠났다. 여행 도중 들른 네덜란드에서 고토 마사시(TYPICA CEO)와 3일간 함께 지내며 공공경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고토가 카사이에게 연락을 취한 것은 귀국 직후였는데, TYPICA의 당면과제인 물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재로서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있는 카사이가 적임자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카사이 씨는 인간미 넘치는 현명한 사람이기에 은퇴했다는 소식을 들은 많은 기업들이 앞다퉈 컨설팅 안건을 제안할 겁니다. 하지만 만약 다른 기업의 컨설팅 안건을 맡을 여력이 있으시다면 그 재능을 더 좋은 일에 쓸 수 있는 TYPICA의 일을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간절한 말을 전했지만, 카사이는 단칼에 거절했다.

“회사를 설립한 지도 얼마 안 됐는데 그건 아닌것 같아. 25년간 샐러리맨으로 일하다가 겨우 독립했는데, 다시 회사원 생활로 돌아가는건 싫어!”

“알겠습니다. 그럼 프리랜서로 계약하는건 어떨까요? 우선 TYPICA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물류의 새로운 모델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함께 만들어 보죠. 그 계획의 실현을 더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으시다면 TYPICA에 완전히 이적해 주셔도 되고, 그렇지 않다면 팀이 발족된 후에 계약을 해지하셔도 됩니다.”

그런 조건이라면 괜찮을것 같다라고 생각한 카사이는 TYPICA에 참여하여 먼저 물류 기반을 정비하고 방향성을 구축하기 위해 외부 물류 컨설턴트에게 자문을 구하며 일을 진행시켰다.

국제 물류의 큰 흐름에서 보면 개선해야 할 점과 도입해야 할 시스템의 요건은 명확했지만, 유통 거래 총액 4000억 엔을 실현하는 미래를 내다본다면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었다. TYPICA가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역할은 84개 국가와 지역에 흩어져 있는 생산자와 로스터를 연결하는 매개체다. 생산자로부터 출발하여 예약한 생두가 로스터에게 도착하는 일련의 사이클을 사내 구성원들과 다시 한 번 공유하며 개선해 나가는 것이 앞으로의 TYPICA에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카사이는 언제부터인가 프리랜스 계약상 요구되는 일의 범주를 훌쩍 뛰어넘어 대부분의 시간을 TYPICA 멤버들과의 대화에 할애하고 있었다.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도중에 좌절했었던 지난날의 서러움이 일에서 느끼는 성취감과 함께 가슴속에 되살아나고 있었다.

경영=세상의 구조를 바꾸는 수단

카사이는 일본의 기후현 출신이다. 부친이 세운 공장을 물려받아 경영하기 위해 오사카대학에 진학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파칭코와 밴드 활동이 그의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렇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지 못하고 있던 카사이를 뒤흔들었던 것은  ‘아버지가 업무 중 부상으로 중상을 입었다’는 소식이었다. 아버지가 그린 청사진에 금이 가면서 삶의 목적을 잃은 카사이는 제대로 된 취업 활동도 하지 못한 채 당장 지금이 즐거우면 된다는 반쯤은 절망적인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전환점은 어느날 갑작스레 찾아왔다.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카사이는 어느 날 단골 손님에게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러자 손님은 “좋은 대학에 들어갔는데, 그렇게 사는건 너무 아깝지 않아? 마침 우리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뽑고 있으니, 한번 지원해봐”라고 권유했다.

장발에 크롬하츠 반지를 끼고 있던 그는 밤 10시쯤 가게에 와서 늦게까지 즐겁게 술을 마시고 돌아가는 것이 일상 이었다. 일에 대해 자세히 물어볼 기회는 없었지만, 디자인 관련 업무로 해외 출장도 많이 다닌다고 한다. 이런 사람이 활기차게 일하는 회사라면 분명 외적인 부분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갑자기 흥미가 생긴 카사이는 어떤 사업을 하는지도 모른 채 그 회사에 지원했다.

면접을 보고 무사히 합격한 회사가 바로 펠리시모였다. ‘행복사회학의 확립과 실천’을 이념으로 하는 이 회사는 사업성, 독창성, 사회성 이 세 가지가 겹치는 부분을 사업 영역으로 정하고 단순한 비즈니스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른 카탈로그 통신판매 회사와는 결이 달랐다. 합격 후 회장인 야자키 가쓰히코(펠리시모 2대 사장/교토포럼 이사장)로부터 쇼토쿠 태자의 ‘제17조 헌법’을 건네받았을 때는 충격을 감출수 없었다고 한다.

“회사라는 것은 이익을 내면서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공공의 그릇입니다. 그리고 당신들이 그 주인공입니다. 샐러리맨 인생에서 경영자 인생으로, 30세까지는 회사에서 자리를 제공해 주겠지만 30세가 되면 여러분도 회사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경영은 목적이 아니라 세상의 구조를 바꾸는 수단이다──. 야자키 가쓰히코로에게 그렇게 배웠던 카사이가 이후 25년 동안 야자키 카즈히코(펠리시모 3대 사장)의 지휘 아래 사업 활동과 사회 과제 해결, 생활자의 역할 인식의 발전과 사업 참여, 업종을 초월한 파트너십을 통한 신규 사업 개발에 매진해 왔다.

그 대표적인 예시가 9.11 테러 당시 기획한 자선 티셔츠가 누적 20만 장이 판매된 PBP이다. 이후 티셔츠의 원료인 면화 생산과 관련된 인도 농가의 문제를 알게 되면서 순환형으로 해결하는 구조를 프로젝트화하여 재단법인을 설립했다.

이후 신규 사업 개발 담당 임원으로서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대형 철도회사와 제휴하여 추진한 글로벌 EC 사업, 대형 메신저 앱과 제휴한 CtoC 정액제 배송 사업, 대형 농업법인과 제휴한 지역 농산물 판매 사업, 대형 물류회사와 제휴한 라스트마일 배송 조인트 벤처 등 수많은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했다. 2020년부터는 패션 쇼핑몰 브랜드 및 EC 사이트 ‘haco!’를 운영하는 자회사의 운영에 매진하여 이듬해에는 조직의 경영을 맡게되었다.

“사회의 불균형을 개선하고, 세상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사회구성원이 참여하는 경영으로 산업구조를 바꾸고 사업을 글로벌로 확대하는 것. 이러한 구상을 하며 사업을 일구어 왔지만, 동시에 찾아온 코로나 사태와 급격한 환율 변동으로 인한 타격을 회복하지 못하고 2024년 3월, 자회사를 청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제 힘이 역부족이라 ‘의류 패션 EC 회사’라는 단계에서 좌절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스승(야자키 가쓰히코)에게 배웠고, 같은 이상을 추구하고 실천하는 고토 씨 마저 실패하게 내버려 둬선 안 된다고 생각했죠.”

모든 사람이 더욱더 큰 활약을 하도록 끝까지 응원하는 조직

면화, 콩, 밀과 마찬가지로 원자재의 일종인 커피는 선물 거래에 따른 국제 가격의 폭등과 폭락, 노예제도와 식민지 제도의 잔재라는 공통된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세계 농업계에서도 생산물의 유통 효율을 우선시하다 보니 각 생산자의 개성은 무시된 채 획일화된 상품으로 시장에 내몰리고 있다.

“다이렉트 트레이드로 생산자와 로스터를 매개하는 TYPICA가 상징적인 존재가 되어 세계 표준을 바꿀 수 있다면, 다른 분야에도 파급되어 원자재 시장 구조와 농업 전반의 개혁으로 이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커피는 품질이나 가격과 맛(체감)이 연동되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에 면화나 콩에 비해 실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 무한한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지만, 어른이 되면서 조금씩 포기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제게는 스스로 판매 가격을 정할 수 없고, 성장과 확장의 기회가 제한되어 있는 커피 생산자, 면화 생산자도, 정해진 월급 안에서 생활을 꾸려나가며 밤이 되면 술집에서 회사에 불평불만을 토로하는 샐러리맨들도 그 뿌리는 같다고 생각합니다. 규칙이나 구조 안에 인간이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 인간의 잠재력이 발휘되는 사회는 실현될 수 있고, 실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궁극적인 이상은 모든 사람이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지만, 현실적으로 재능이나 능력의 문제로 실현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계속 도전하는 것과 포기하고 안주하는 삶을 사는 것 중 전자가 압도적으로 더 풍요로운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더욱더 크게 활약하는 것을 끝까지 응원하는 조직의 존재 방식을 추구하는 것도 TYPICA에 있어 매우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TYPICA가 목표로 하는 유통 거래 총액 4000억 엔이라는 목표는 정해진 틀과 팀, 예산 편성만으로는 절대 달성할 수 없는 목표입니다. 사람을 중심에 두고, 관계된 모든 이들의 가능성을 무한히 확장해 나갈 때  비로소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조직을 지속적으로 성장,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어느 정도 규칙을 정하고 체계를 정비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규칙은 한번 만들어지면 지키는 것이 목적이 되어 더 이상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규칙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더 열린 미래를 향해 유연하게 업그레이드해 나가는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모두가 함께 일할 수 있는 조직으로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카사이의 삶의 주제는 ‘노예성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제도로서의 노예 ‘제도’가 아니라, 남이 시키는 일만 하는 ‘본성’, 의존하고 남 탓만 하는 ‘본성’에 주목한다. 문제의식의 핵심은 쉽고 편리한 것을 추구하며 자신을 정당화하면서 자신의 가능성, 주체성, 능동성에 뚜껑을 덮는 인간의 노예’성’이다.

“작고하신 회장님과 마지막으로 약속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어디까지나 능동적으로, 자발적으로, 사람이 계속 발전함으로 인해 여러 가지 어려움은 해결될 수 있다는 것. 인간의 본성에 대한 해방이라는 주제가 실현될 때, 많은 요소들을 분절하고 차별하고 구별해 온 사회 구조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제가 경영한 회사를 청산할 때는 ‘내 나이 47살, 인생의 산 하나를 끝까지 등반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25년의 사회생활 동안 신규사업 개발부터 IPO, 임원, 경영까지 많은 경험을 해왔기 때문이죠. 하지만 아직 뭔가 포기할 수 없었고, 지금도 포기하지 않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아직 항해를 계속하고 싶었습니다. 세계 일주를 하며 여러 나라를 다니며 다양한 가치관, 종교관, 생활관을 접하면서 느낀 것은 나는 작은 세상에 갇혀있었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유통하는 원두의 질과 양 모두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 TYPICA와 인연을 맺으면서 깨달은 것은, 제가 올랐던 산은 높이 솟은 산맥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경험을 커피업계에 환원하겠다는 식의 자만심은 전혀 없습니다. 그저 한 명의 도전자이자 경영자로서 사업과 산업, 그리고 세계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기여하고 싶을 뿐입니다. 이를 위해 항상 베스트를 추구하면서 목표의 실현 가능성을 계속 높여 나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