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을 펼치다. 변수가 큰 커피의 세계에서
2025년 1월, TYPICA의 유럽팀에 새로운 커뮤니티 매니저가 합류했다. 10대 시절부터 커피 생두 공급업자로 일하는 것을 꿈꿔온 미국 미네소타주 출신의 잭슨 부스(Jackson Booth)다.
미국의 대학에서 국제 비즈니스를 공부한 뒤, 코로나19 시기에 약 5개월간 기간 한정 온라인 스토어를 운영했다. 그 후 프랑스의 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한 뒤, 닛산자동차에서 근무하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마케팅 경험을 쌓아 TYPICA의 일원이 된 잭슨은 현재 약 4년간 거주한 프랑스를 중심으로 신규 고객을 발굴하고 기존 고객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데 힘쓰고 있다.
고등학생 시절 커피숍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면서 커피를 둘러싼 광활하고 깊은 세계에 매료된 지 약 10년이 흘렀다. 그 열정을 헛되지 않게 하는 기술과 노하우를 갖춘 뒤 TYPICA에서 일하게 된 잭슨을 계속해서 나아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몰입할 수 있는 인생을
인생에서는 좋아하던 것을 싫어하게 되기도 하고, 어떤 계기로 별로 관심 없던 것을 좋아하게 되기도 한다.
인구 100명 정도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자라, 16살 때 미네소타주의 로스터리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기 시작한 잭슨에게 커피는 ‘특별한 애착이 없는’ 존재였다. 그러던 중 “월급을 올리고 싶으면 로스터 자격을 따서 로스팅을 하는 길도 있어”라는 오너의 제안이 열정을 가지고 제대로 해보자고 마음먹게 된 첫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발을 들였던 일이 그의 세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100시간의 실습을 하면서 책과 영상을 통해 커피에 대해 배워가는 과정에서 잭슨은 커피의 세계에 완전히 매료되어 있었다.
“로스팅 방식에 따라 컵의 맛과 프로파일까지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 설렜습니다. 말하자면 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거죠.
이건 나중에 깨달은 점인데,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커피는 한 잔 한 잔마다 각기 다른 맛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고, 파고들려면 얼마든지 파고들 수 있는 끝없는 세계인 거죠.
게다가 세계의 먼 곳에서 긴 여정을 거쳐 온 것을 마시고 있다는 실감도 자극적이었습니다. 언젠가는 세계를 여행하며 생산자들과 교류하고 훌륭한 커피를 카페와 로스터리에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그렇지만 잭슨의 안에는 현실에 발을 딛고 사물을 바라보는 냉정한 자신이 있었다. 세계를 누비며 커피와 관련된 일을 하려면 신뢰받을 수 있는 자격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잭슨은 국제 비즈니스를 전공한 학사 과정을 마친 후 MBA를 취득하기 위해 프랑스로 건너가 석사 과정을 밟았다.
석사 과정을 마친 뒤에는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지만, ‘사람도, 음식도, 문화도 모두 마음에 들었던’ 잭슨은 프랑스에 남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커피 생두와 관련된 일은 찾지 못해 결국 석사 과정 중 인턴으로 일했던 닛산자동차에 입사하게 된다. 마케팅 매니저로서 담당하는 2개 차종의 마케팅 시책을 총괄하며, 데이터 분석과 예산 관리, 부서를 넘나드는 매니지먼트 등의 역량을 쌓았다.
“닛산에서 일하면서 좋았던 건 열정과 애착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자동차에 그다지 열정을 갖고 있진 않았지만, 그들에게서 좋은 자극과 에너지를 받을 수 있었죠. 팀의 일원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자고 생각했기에 2년 동안은 이직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고 눈앞의 일에 집중했습니다.”
그런 잭슨에게 “깨달음의 순간”이 찾아온 것은 2024년이었다. 장기 휴가 동안 잭슨은 친한 친구와 함께 스페인의 9개 도시를 2주간 여행했다. 그 하나하나가 새로운 기억으로 마음에 새겨져 가는 듯한 아름다운 풍경, 친구와 함께 보낸 시간, 여행지에서 마주친 사람들과의 교류……. 여행의 마법은 잠재의식 속에 잠들어 있던 바람을 일깨워 주었다.
발견과 열정으로 가득한 나날을 앞으로도 계속 맛볼 수 있도록 다시 한번 커피의 세계로 돌아가자. 이직을 준비하며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잭슨은 예전부터 인연이 있던 TYPICA의 직원에게 연락을 취했다.
“닛산에서 일할 때도 동료들의 모습을 보며 부러워했어요. 저도 이렇게 무언가에 몰입할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죠. 어쨌든 계속 커피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언제, 어떤 방식으로 그것을 실현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어요.”

말하자면 로스터의 컨설턴트
‘우회하는 길’이라고도 할 수 있는 형태로 TYPICA에 입사해 다시 커피와 진지하게 마주하게 된 잭슨. 하지만 인생에 헛된 일은 없다. 닛산자동차에서 마케팅 매니저로서 일하며 갈고닦은 역량은 TYPICA에서도 확실히 도움이 되고 있다. 프랑스, 독일, 벨기에, 스위스의 로스터들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신규 고객을 발굴해 나가는 데 있어 ‘숫자에 강하다’는 점이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평소 늘 유의하고 있는 점은 고객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요청했을 때 바로 제시할 수 있는 상태로 준비해 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생두 구입 대금의 지불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모든 선택지별 총 지불 금액과 지불 스케줄 등을 미리 자료로 정리해 두고 상담에 임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웹사이트에서 확인해 주십시오’ 같은 답변을 하면 기회 손실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요.
로스터들은 기본적으로 매우 바쁜 사람들입니다. 소규모 사업의 경우에는 한 사람이 여러 업무를 맡아 처리하는 상황이며, 규모가 크고 어느 정도 분업이 되어 있는 곳이라 하더라도 생두 조달에 관여하는 책임이 무거운 일을 맡은 사람은 방대한 업무를 떠안고 있죠. 그렇기 때문에 고객이 ‘알고 싶은 정보’를 가능한 한 간단하고 빠르게 전달하는 것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보람이 있어서인지 잭슨은 입사 후 반년이 채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에서는 순조롭게 신규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제가 합류하기 전에 TYPICA가 쌓아 온 신뢰가 있다는 점, 프랑스에서 4년 정도 거주해 프랑스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점, 프랑스 사람들의 비즈니스 관행과 암묵적인 부분에 대해 직접 경험하며 이해하고 있다는 점. 그런 기반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각 로스터와 충분한 시간을 들여 대화를 나누고 이야기를 들은 것이 가장 컸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새로운 사람과 만날 때는 언제나 그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듭니다. 상대를 깊이 이해하면 할수록 그들의 니즈에 맞춘 제안과 대응이 가능해지고, 비즈니스 성과로도 이어지죠.
설령 현시점에 그들의 니즈에 꼭 맞는 것이 없더라도 그들이 무엇을 원하고 바라는지 알고 있으면 그게 손에 들어왔을 때 바로 그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연락을 취할 수 있습니다. 그런 개별적인 니즈에 맞춰 대응하는 방식이 신뢰 관계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들이 스스로 성공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컨설턴트가 된 듯한 느낌이 듭니다.”

누구나 핵심 인물이 될 수 있는 커피의 세계
잭슨이 인생에서 처음 품었던 꿈은 ‘유명한 뮤지션이 되는 것’이었다. 부모님과 누나를 비롯한 가족 모두가 악기 연주와 노래를 즐기는 환경에서 지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나 한 번쯤 품게 되는 희미한 꿈은 10대 초반 무렵에는 사라져 있었다. 특출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삶이 자신에게는 맞지 않는다고 느낀 것이다.
“커피의 흥미로운 점은 눈에 띄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바리스타나 로스터 챔피언이 되지 않아도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죠. 특히 스페셜티 커피 영역에서는 공급망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생산자는 어떤 품종을 선택할지, 농장을 어떻게 관리할지, 어떻게 정제할지 등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로스터는 로스팅 정도와 프로파일에 따라, 바리스타는 커피를 내리는 방법과 추출 레시피에 따라 커피의 맛을 조절할 수 있죠. 요컨대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사와 창의적인 시도가 커피의 가치를 좌우한다는 것입니다.
저에게 있어 마케팅과 커피, 그리고 지금도 취미로 하고 있는 음악에 공통되는 점은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으며,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특히 커피는 집 주방에서 커피를 내리기만 해도 창의적인 요소가 있으니까요.
반대로 말하면 자신이 무언가를 창조하고 있다는 느낌이 없으면 인생은 지루해지기 마련입니다. 이전 직장에서 일이 가끔 눈앞의 숫자만 쫓는 작업처럼 느껴졌던 점도 커피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는 동기 부여가 되었습니다.”

2020년 학사 과정을 마친 후 석사 과정이 시작되기 전 5개월 동안,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온라인 구매에 비즈니스 기회를 발견한 잭슨은 직접 로스팅한 커피를 판매하는 기간 한정 EC 사이트를 개설해 운영했다. 입소문 활용과 표현 방식의 고민, 기간 한정을 내세운 판매 전략 등 자신의 창의력을 발휘함으로써 비록 똑같은 상품이라 할지라도 고객의 기대감은 달라지고 구매 행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0에서 1을 만들어 내는 그 프로세스에 잭슨 자신이 누구보다도 설레고 있었다.
“예전부터 어떤 일이든 가능성을 찾아내거나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는지 고민하는 습관이 있던 것 같습니다. 학교 학생들과 선생님, 이웃 주민을 대상으로 팝콘과 소다를 팔던 10대 시절에는 사람과 관계성을 쌓는 것이 매출로 이어진다는 성공 경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생필품은 아니지만, 있으면 기쁘고 사람들을 미소 짓게 만들죠. 그런 점에서는 팝콘과 소다, 그리고 커피는 같다고 생각합니다.”

관계가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낸다
0에서 1을 창조하는 수단은 반드시 창업이나 창작 활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경영자인’ 조직을 지향하며, 개개인의 재량이 크고 사내 창업 활동을 하는 듯한 느낌을 맛볼 수 있는 TYPICA는 잭슨에게 자연스럽게 잘 맞는 환경이었다.
“상대방이 원할 때에 한해서지만, 로스터를 상대로 상담할 때는 생두뿐만 아니라 로스팅과 카페 운영에 대해서도 그들의 팀 일원이 된 느낌으로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그들 역시 스스로 사업을 시작한 안트러프러너(entrepreneur, 기업가)입니다. 저와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화가 매우 자극적이고 즐겁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로스터가 누구에게/어디에서 생두를 살지 결정하는 것도 결국 개인적인 관계에 크게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프랑스가 좋은 예인데요, ‘이 사람은 믿을 수 있다’, ‘이 사람에게 공감한다’, ‘이 사람이 좋다’ 등과 같은 아주 단순한 감정에서 생겨난 관계가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내고 있고, 그런 네트워크는 가속적으로 확산될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TYPICA는 웹사이트와 사람을 매개하며 ‘이야기해야 할 것을 지닌 생산자’와 ‘주목받아야 할 생산자’의 커피와 그들 자신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며, 그 매력을 널리 알리는 확성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각각의 커피가 이름 없는 존재로 남지 않도록 고민하고 있죠. 그렇기 때문에 제게는 생산자에 대해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로스터에게 전달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TYPICA에서 일하다 보면 ‘무언가 크고 의미 있는 것의 일부가 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2030년까지 (질과 양 모두) 세계 최고의 커피 생두 다이렉트 트레이드 플랫폼이 되겠다는 목표 달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우리의 가치관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앞의 고객과 성실히 마주하고, 신뢰와 성과를 쌓아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