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 기회를 낳는다. 구조를 바꾸어 더 나은 세상을
엔지니어 경력 22년 중에서 디엔에이(DeNA)의 모바게타운(현 모바게(Mobage))과 인쇄 셰어링 서비스 라쿠스루(Raksul) 등 세상에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시스템의 구축, 운용에 관여해 온 아리사와 고스케(有澤高介) 씨. ‘그 스킬을 살려 더 큰 사회적 임팩트를 낳을 수 있는’ 회사로서 2023년 6월에 TYPICA에 입사한 이후, CTO와 같은 역할을 맡아 왔다.
대학 중퇴 후 인간의 빛도 그림자도, 성스러움도 속됨도 안고 있는 인터넷 세상에 몸을 담근 지 20년이 넘었다. 과연 자신이 만들어내고 있는 시스템은 세상에 도움이 되고 있을까? 오히려 사회 문제를 낳고 있을 뿐인 게 아닐까. 그런 양심의 가책을 가슴에 품으면서도 인터넷과의 인연을 끊지 못했던 아리사와 씨는 지금 시원한 마음으로 일에 임하고 있다.
시스템으로 사회 과제를 해결한다
“재미있는 회사가 있는데, 관심 있어? 대표인 고토(後藤) 씨를 소개해 줄게.”
라쿠스루에서 일하는 아리사와가 TYPICA의 창업기부터 TYPICA에 출자하고 있는 딜라이트 벤처스(Delight Ventures)의 공동대표 난바 도모코(南場智子)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것은 2023년 1월의 일이다.
온라인과 대면으로 고토와 이야기하며, TYPICA의 비전과 실현을 망설임 없이 믿는 고토에 마음이 움직인 아리사와의 안에서 이직 의사는 거의 굳어져 있었다. 유일하게 아리사와를 망설이게 했던 것은 지금의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함께 일하고 있던 멤버와 최종 면접으로 만났던 2024년에 입사 예정인 대졸 신입 멤버에게 미안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이후 난바로부터 받은 ‘뛰어들어 보면 되지 않을까?’라는 메시지에도 힘입어 신세계에 뛰어들기로 한 것은 2월 중순이다.
“커피는 석유 다음으로 시장 규모가 큰 무역 상품이며, 전 세계 하루 소비량은 약 25억 잔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가진 기술을 활용하면 현재로서는 자기가 생산한 커피가 어디에서 팔리고, 누가 마시고 있는지 모르는 아프리카와 중남미 생산자들에게 로스터와 소비자의 기쁨을 전달할 수 있게 됩니다. 세상에 큰 임팩트를 가져올 수 있는 플랫폼의 시스템 구축에 관련된다고 생각하니 설렜습니다.”
입사 이후 아리사와는 프로덕트 팀의 엔지니어로서 뉴모델(New model) 개발을 추진해 왔다. “TYPICA의 커피콩을 취급하는 커피숍은 좋은 가게다”, “생산자의 얼굴이 보이고 맛있다”라는 소비자의 의견과 평판을 가시화하고 생산자에게 전달한다는 TYPICA의 이상을 구현할 수 있도록 시스템의 개선, 개량을 이어가고 있다.
“세상이 전체적으로 계속 UX(User Experience, 사용자 경험)가 향상되고 있는 지금, 사용하기 불편하면 ‘보이지 않는 기회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역시 로스터가 만족하며 TYPICA에서 생두를 사주지 않는 한 생산자에게는 환원할 수 없으니까요.”
‘정답’은 스스로 찾아낸다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구조의 공략법을 발견해 합리화, 효율화를 도모하는 것은 어릴 적부터 특기였다. 5살 때 당시 유행했던 패밀리 컴퓨터 게임기의 액션 게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1’을 일주일 만에 클리어하는 등 그 재능은 일찍부터 꽃피어 있었다.
중학생 무렵에는 액션 레이스 게임 ‘마리오 카트’에 몰두했었다. 몇 개의 레이싱 코스 중 하나로 좁혀 공략법을 찾아가면서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가운데 타임이 1초, 또 1초 줄어가는 것이 즐거워 견딜 수 없었다.
드리프트하면서라면 물 위를 달릴 수 있다거나 어느 구간을 가로질러 가면 큰 폭으로 타임을 줄일 수 있다. 그런 공략법을 발견하고는 단숨에 길이 열린 느낌이 들었다. 말 그대로 먹고 자는 것도 잊을 정도로 빠져들었다.
당시 주변에는 마리오 카트를 반복해서 하는 친구가 없었고 인터넷도 없었기 때문에 자기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할 수 없었다. 자신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게 된 1999년, 문득 궁금해서 세계 랭킹을 찾아봤더니 세계 3위에 상당하는 타임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판명되었다.
게임에서 뛰어난 기록을 세우기 위해 자연스럽게 길러졌던 상식과 전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발상은 일에서도 활용되었다. 새로운 서비스, 시스템의 구축이라는 답이 없는 (나오지 않는) 영역이기 때문에 아리사와는 자신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었다.
바꿔 말하면 어릴 적부터 비효율적인 것을 싫어했다. 초등학생 시절 고향인 삿포로의 공립 초등학교의 학력 수준은 상대적으로 낮았기 때문일 것이다. 수업 내에서 교과서를 끝까지 배운 적은 거의 없다. 어렴풋이 현실을 이해하고 있던 아리사와의 학습 의욕을 앗아간 것은 “도쿄에 있는 학교보다 진도가 느리다”라는 도쿄에서 온 교사의 한마디였다.
“이 환경에 있으면 나는 더 이상 발전하지 않을 거란 걸 깨달았습니다. 만약 남들보다 몇 배나 노력하면 환경의 핸디캡을 메울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거기에 에너지를 쓰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리사와는 커리어 선택에 있어서 어떤 사람들과 일하는지를 중시해 왔다. 실제로 엔지니어 수준이 너무 낮은 것에 실망하여 이곳에서는 성장할 수 없다고 느낀 회사는 1년 반 정도 만에 그만두었다. 그 후 모바게타운의 5번째 엔지니어로서 디엔에이(DeNA)로 이직한 것은 수준 높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통해 기술을 연마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디엔에이(DeNA)에는 나이는 어리지만 이 사람에게는 못 이기겠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많이 있었는데, 한 가지 능력을 연마한 사람이 많은 것이 엔지니어 세계의 특징이려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업무에서도 결과를 남기기 때문에 이전 직장의 면접에서는 지원자에게 그동안 진심으로 해 온 일을 깊이 파고들어 물어봤었습니다. 인간으로서의 깊이를 알게 됨으로써 서로 존경할 수 있는 관계가 생겨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
게임에 있어서는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하는 아리사와였지만, 학업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애초에 공부에 흥미가 생기지 않고, 숙제도 전혀 의욕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아리사와 자신은 기억이 없지만, 어머니가 말하기를 ‘어릴 적부터 집단행동을 하지 못하는 타입이었다’고 한다. 집단 속에서 튀었던 것이 아니라, 따라서 해야 하는 관습에 적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워낙 획일적이고 틀에 맞추려고 하는 일본의 학교 교육이 성격에 맞지 않았던 아리사와는 대학도 중퇴했다. 집이 좋아서 건축학부에 들어갔지만, 교수나 강사가 시키는 대로 과제를 해야 하는 것에 염증을 느낀 것이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지만, 오래 일한 기억이 없다. 신문 배달과 회전 초밥 체인점, 파친코 가게……. 3개월 계속하면 잘 된 거고, 가장 짧은 경우에는 일주일 만에 좌절했다. 유일한 예외로서 2년 정도 계속했던 것이 대개 일주일에 한 번씩 ‘학생에게 공부가 아니라 인생 이야기만 했던’ 개별 지도 학원 강사 일이다.
그 와중에 익힌 것이 파친코에 있는 슬롯머신이었다. 친구가 하고 있는 것과 공략집, 인터넷 정보를 바탕으로 이 정도면 이길 수 있다고 성공을 확신한 아리사와는 이윽고 파친코 가게에 들어박히게 되었다. 지역의 대졸 초임 임금의 배인 한 달에 30만 엔을 평균적으로 벌게 되자 ‘착실한 사회인’이라는 미래상은 더욱 희미해졌다. 어느새 ‘평범한 회사’에 취직한다는 길은 막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장래의 꿈이나 실현하고 싶은 의지도 없다. 그런 아리사와가 활로를 찾은 것이 인터넷 세상이었다. 그중에서도 2채널(2ch)은 귀중한 정보원이었는데, 누군가가 추천해 준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와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의 책을 읽으면서 파친코로 생계를 유지하는 생활에서 빠져나오고자 도모하고 있었다.
참고로 비즈니스 서적을 읽기 시작한 계기는 친구의 집에서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읽은 것이다. 박봉이라도 참아가며 땀 흘려 계속 일할 게 아니라 머리를 써서 현명하게 돈을 벌자는 메시지가 아리사와의 마음에 불을 지핀 것이다.
이후 2채널 사용자들이 실제로 모이는 도쿄의 이벤트에 참여한 것이 분기점이 되었다. 2채널 설립자인 히로유키를 비롯해 영민한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면서 아리사와는 도쿄와 홋카이도의 수준 차이를 통감했다.
그 이벤트에서 발표했던 이가 훗날 함께 일하게 되는 중국인 A였다. 소형 트럭 운전기사로 일당을 벌던 A는 엔지니어 스킬을 살려 아이모드(i-MODE) 메일로 짐과 운전기사를 매칭하는 우버이츠(Uber Eats) 같은 사업을 시작할 구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섣불리 일본에서는 편견을 받기 쉬운 중국인으로 사회적 신용도 실적도 없는 만큼 자금 조달처를 찾을 길이 없었을 것이다. A는 자신의 구상을 발표하고 심사원인 투자가가 출자할지를 결정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머니의 호랑이(マネーの虎)’에 출연했다. 방송상으로는 출자를 얻게 되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출자를 얻지 못하고 끝’이 나게 되었다. 후에 프로그램 측에서 사업 내용 등을 자세히 조사했을 때 전망이 너무 낙관적이라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A로부터 “너는 뭐랄까 활력이 넘치니까 함께 일하고 싶어”라고 말을 들은 아리사와는 아직 사업 내용은 백지상태이지만, 이 사람과 일을 하면 어떻게든 될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희망을 가슴에 품고 파친코에서 당분간 쓸 돈을 벌어 상경했다. 이때 아리사와는 21세였다.
막상 합류해 보니 클라이언트인 만남 사이트의 가입자를 늘리기 위해 스팸 메일을 보내는 일을 하기로 했다고 들었다. 스팸 메일 규제가 강화된 이후에는 중국으로 거점을 옮겨 메일 송신도, 웹(Web) 서버 경유도 중국에서 하도록 하여 회사는 씩씩하게 살아남았다. 우수한 프로그래머로 비용이 들지 않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A를 필두로 뛰어난 기술자가 모인 환경에서 아리사와는 만남 사이트의 플랫폼 시스템과 쇼핑 사이트의 구축, 운용, 웹(Web) 앱의 제작 등을 실전에서 배워갔다.
“당시에는 살기 위해 일을 했다고 할까, 선악이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눈앞에 있는 작업을 그저 해내고 있었던 느낌입니다. 그렇지만 하면 할수록 작업 속도가 올라가고 간단한 프로그램을 작성한 것만으로도 수작업으로 꾸준히 시간을 들여서 하던 일이 순식간에 끝나게 되었습니다. 그게 너무 재미있어서 열중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궁리 여하에 따라서 회사 멤버와 사용자의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요컨대 제가 하는 일이 큰 임팩트를 낳고 있다는 실감이 저의 모티베이션의 원천이겠죠. 그래서 만약 그 과정에서 단순 작업이 필요하다면 마다하지 않습니다. 반면 신문 배달이나 설거지는 아무리 효율화해도 도움이 된다는 실감이 적습니다. 그게 큰 차이인 것 같습니다.”
새로운 일을 하는 보람을 아리사와에게 알려준 것이 ‘구조를 바꾸면 세상은 더 좋아진다(BETTER SYSTEMS, BETTER WORLD)’를 비전으로 내건 전 직장인 라쿠스루다. 구시대적인 상관습이 남아 있는 거대한 인쇄 업계에 뛰어든 라쿠스루는 일본 전역의 인쇄 회사 2만여 곳의 가동되지 않는 인쇄기를 활용하여 ‘빠르고, 저렴하고, 간단’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급성장해 왔다.
“3조 엔의 인쇄 시장의 낭비를 제거할 수 있도록 EC 이용률을 올려 고객의 비용 절감과 업무의 효율화에 공헌한다. 이것이야말로 옳은 일이지, 이거라면 조금 더 인터넷 세상에서 열심히 할 수 있을 거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줄곧 to C용 서비스에 관여해 와서 인터넷의 부정적인 측면이 눈에 띄는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인터넷이 있었기 때문에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자신의 자녀들에게는 컴퓨터, 스마트폰의 이용을 엄격히 제한했다. 빌 게이츠(Bill Gates)는 자녀가 14세가 될 때까지 휴대전화를 갖지 못하게 했다. 인터넷의 어둠을 아는 테크 업계 사람 사이에서는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스마트폰은 금지하고 인터넷은 보여주지 않는다’라고 하는 자녀 교육 방침은 일반적이다.
물론 아리사와가 몸담았던 소셜 게임에도 긍정적인 측면은 있다. 의사소통이 서투른 사람과 학교나 조직에 있을 곳이 없는 사람이 게임을 통해서 사람의 온기와 유대감을 느끼고 고독을 치유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는 일종의 안전망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도 아리사와는 부정적인 측면을 못 본 체할 수 없었다.
“SNS가 얽힌 부정적인 뉴스를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메시지 앱도 굉장히 편리하지만, 제 친구의 딸이 모르는 사람과 메시지를 주고받았다는 부류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인터넷의 무서움을 재확인하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맛있는 커피를 키우는 생산자에게 로스터와 커피 애호가가 기뻐하는 소리를 전달하는 것을 지향하는 TYPICA에서는 떳떳하게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허울 좋은 말이지만,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초등학생 시절 아리사와는 게임에 푹 빠져 있었는데, 한편으로는 텔레비전과 책, 만화를 통해 알게 되는 세계의 빈곤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작가의 피폭 경험을 바탕으로 한 『맨발의 겐』과 『붓다』, 『불새』와 같은 데즈카 오사무(手塚治虫)의 작품이 사회의 왜곡과 인간의 모순을 가르쳐 주었다.
특히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인생의 뼈대가 된 것은 “사는 것은 고통이다”라는 붓다의 말이었다. 왜 왕따와 싸움이 끊이지 않고 거기에 자신과 선생님도 가담하게 되는 걸까? 왜 아버지는 재미없게 계속 일하고 있는 걸까? 그러한 삶의 궁금증을 풀어준 것이 ‘사는 것 = 고통’이라는 전제였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게임, 만화, 맛있는 식사 같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통해 조금이라도 인생 속에서 즐거움을 만들어내고 싶고, 이를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인터넷은 매개 수단으로서 최고지만, 지금도 싫고 부정적인 소리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고 자란 환경과 관계없이 자신의 노력과 궁리에 따라서 올라갈 기회를 주기도 합니다.
실제로 레일에서 벗어난 제가 경력을 쌓아 올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무언가를 연마하려고 하는 성품과 엔지니어의 적성이 제게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면, 만약 인터넷과 만나지 않았다면 정말 어떻게 되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인터넷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