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ans on Fire 마리아 에르난데스

The Beans on Fire

마리아 에르난데스

틀에 박힌 형태는 없다. 공유를 통해 펼쳐지는 자유로운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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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재즈처럼 연주되는 것. 그런 컨셉을 내걸고 있는 The Beans on Fire는, 프랑스·파리에서 독특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커피 회사이다. 회사의 주축이 되는 프로젝트는, ‘콜라보레이티브 로스팅’ 이라고 불리는 공동 로스팅 사업. 현재 27곳의 로스터가 이 회사의 공동 로스팅 공간을 이용해 생두를 볶고 있다.

The Beans on Fire의 접근법은 다각적이다. 직접 로스팅한 커피를 도소매로 판매하거나, 파리에 2곳의 커피 가게를 운영하는 한편, 스페셜티 커피 업계에 흥미가 있는 사람들에게 실무적인 로스팅 강좌도 열고 있다.

그런 The Beans on Fire를 앙드레 오요스 고메스와 함께 설립했던 사람이 콜롬비아 출신의 마리아 에르난데스이다. TYPICA의 이념과 생각하는 바가 일치하는 마리아의 삶의 방식을 살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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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커피를 알리기 위해

The Beans on Fire가 파리에서 운영중인 두 커피숍의 외관에는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 가게 로고가 똑같아, 자세히 보면 문과 벽의 모양도 비슷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외벽의 색깔이 전혀 다르다. 초록이 섞인 시크한 검정과 선명한 빨강. 얼핏 대충 정한 듯한 배색에는 마리아와 앙드레의 분명한 의도가 숨어 있다.

「확실히 저희는 빨강 검정 흰색의 3가지 색상을 사용하고 있어요. 본질적인 요소가 되는 ‘빨강’은 불처럼 타는 에너지를 나타내고, 심플하고 인식하기 쉬운 ‘흑과 백색’은 생두에서 한 잔의 컵까지의 직접적이고 투명한 여행을 상징합니다. 저희는 여기까지 배색을 정한게 끝인데요, 만약 세번째 점포를 열게 될 경우, 무슨 색으로 할지는 저희도 잘 모릅니다. 앙드레도 색이 정해지지 않은 것이 저희 회사의 상징이라고 말하고는 해요. 어떤 색이든 될 수 있는 게 저희의 개성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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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단순한 외벽의 색깔에서조차, The Beans on Fire의 철학이 스며들어 있다.

「저희가 항상 신경 쓰는 것은 열린 자리를 만드는 것이에요. 겨울에도 문을 열고 있답니다. 손님이 걷기 쉬운 동선을 마련해, 좋아하는 장소에 앉을 수 있도록 테이블이나 의자를 배치하기도 해요. 그것들은 모두, 가게에 모인 사람들이 스스로 교류를 편하게 나눌 수 있게 궁리해낸 방안이에요.」

「코로나 전에는 큰 테이블을 배치했었는데, 눈앞에 누가 앉아 있으면 적어도 인사 정도는 하게 됩니다. 물론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면 말하지 않아도 되지만, 인사 하나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그 자리의 분위기는 달라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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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The Beans on Fire의 공동 로스팅 공간에도 일관되어지는 신념이다. 그 공간에는 집중해서 작업하길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개인실뿐만 아니라,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는 테이블도 마련되어 있다.

「저희들도, 공동 로스팅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로스터의 가게나 거래처 등 다양한 곳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해요.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누군가와 접촉할 기회를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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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 로스팅 공간에 모이는 로스터들의 회사는 무려 27곳에 달한다고 한다. 그중에는 이미 여러 점포를 운영 중인 로스터나 마케팅 등에 투자하기 위해 굳이 가게를 갖지 않은 로스터도 있다. 하지만 상당수는 독립을 꿈꾸고 있는 로스터이다. 2~3년은 공동 로스팅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사업을 키우고, 준비가 된 타이밍에 로스팅기를 사서 가게를 개업하는 패턴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초기 투자비용을 줄일 수 있으므로, 경영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전통적인 커피 시장은 거대해요. 회사를 잘 키워도 업계에 주는 충격은 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스페셜티 커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모수를 늘릴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스페셜티 커피의 지명도가 오르고, 소비량도 증가할 거에요.」

「그 움직임이 확산되면 스페셜티 커피를 대중화할 수 있습니다. 즉, 누구나가 맛있는 커피를 부담없이 마실 수 있는 세계가 현실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페셜 커피를 다루고 싶은 사람들을 돕는 것이 다 같이 성공하는 지름길이 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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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에서 배운 중요한 것

The Beans on Fire 비즈니스 모델의 힌트는 재즈에서 얻었다고 한다.

앙드레의 부인의 유명한 재즈 뮤지션이다. 부인의 집에서 자주 사업 계획을 짜던 마리아와 앙드레는 부인이 멤버들과 즉흥 연주를 하는 모습에 매료당했다고 한다.

「정해진 멜로디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고 하고 있었어요. 훌륭한 실력을 가진 팀원들이 서로의 소리를 들으면서, 자신의 연주를 조립해나가고 있었지요.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커피와 통하는 점이 있어요. 생두를 재배하는 사람, 수출하는 사람, 볶는 사람, 추출하는 사람, 각각 서로의 일에 최선을 다한 끝에 맛있는 커피가 태어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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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eans on Fire는 말하자면 음악 스튜디오입니다. 공동 로스팅 공간에서는 원하는 때에 로스팅 할 수 있고, 다양한 생산지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로스팅된 커피를 접할 수도 있어요. 그곳은 타인과 서로 배우고 성장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좁은 세계 속에 머물러 하나의 아이디어를 고집하지 않고, 도전과 실험을 반복하고 탐구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저의 마음가짐은, 실패를 훌륭한 음악을 낳기 위한 교과서로 삼는 재즈 뮤지션에게서 배운 것이기도 합니다. 재즈의 사고방식이 제 인생의 근간을 이루고 있어요.」

「그렇다 해도, 그것은 기본이 있어야 성립되는 것이죠. 이론을 배우고 기초를 다진 끝에서야 처음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은 재즈, 공부, 로스팅에 공통되는 점입니다.」

「제가 직접 5~6년 동안 은행에서 일한 경험은 바로 그런 기초를 쌓기 위한 노력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은행에서 얻은 최고의 재산은 생산적으로 일을 진행하는 시간관리술과, 자신을 다루는 방법, 그리고 팀을 관리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저는 네 살배기 딸에게도 집 밖의 세상은 스스로 탐구하도록 지도하면서도, 지켜야 할 규칙도 가르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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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할 수 없었던 부탁

콜롬비아에서 나고 자란 마리아에게 커피는 친근한 존재였다. 아버지가 커피 농가를 열어, 커피 생산을 직업으로 했기 때문이다.

많은 생산자들처럼, 아버지는 농장을 이어나가는 것을 자식들에게 바라고 있었지만, 마리아에게는 프랑스에 가서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다는 어릴 적부터의 꿈이 있었다. 아버지의 심정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자신의 꿈에 도전하지 않은 채 인생을 살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콜롬비아에서 학교를 졸업하면 원하는 곳으로 가도 좋다는 게 아버지와 한 약속이었다. 그렇게 대학원 졸업식을 맞은 마리아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듯이 항공기표를 구입해 프랑스로 건너갔다. 2007년, 23살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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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는 파리에 있는 콜롬비아 대사관에서 반년 동안 일한 뒤, 대학원에 다녀 국제비즈니스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보다 창의적이고 속도감 있는 일을 하고 싶어 은행에 취직했다고 한다. 자신의 길을 스스로 택해 온 마리아는 26살 때, ‘농장을 계승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전해 온 아버지에게 이렇게 답장을 했다고.

‘이 농장은 아버지의 농장이잖아요. 저는 이 일을 하고 싶지 않아요. 제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게 해주세요.’

‘알았어, 네가 결정할 일이긴 하지.’

그렇게 말한 아버지의 얼굴은 슬퍼 보였지만, 마리아의 의지는 흔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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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은행에서 매일같이 컴퓨터과 마주하는 삶을 살아간 마리아는, 마음속 한켠에서 갈증을 느끼게 된다.

그런 마리아의 마음을 비집고 들어온 것은, 자신의 고향에서 보낸 어릴적의 추억. 커피 농장을 뛰어다니던 어린 시절이었다. 아버지에게 농장을 잇고 싶지 않다고 말한 날 등등..

아버지는 마리아를 포함한 3명의 자식이 농장을 계승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자, 농장을 팔아치우고 있었다. 모국을 뛰쳐나와 프랑스로 건너간 자신의 선택에 후회는 없었기에, 아버지가 결정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수긍하던 마리아. 그러나 가슴 깊은 곳의 응어리는 가시지 않았다.

고향이나 아버지에 대한 애정은 이윽고, 프랑스에 살면서 모국과의 연결을 유지하는 수단은 없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되자 남은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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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마리아는, 약 6년을 근무한 은행을 퇴직하고, 파리에서 최초의 스페셜티 커피 가게「La Cafeotheque」(라·카페 오텍)」에서 커피의 세계로 뛰어 들게 된다.

「콜롬비아의 커피 생산자와 깊게 이어지는 일을 하고 싶다, 평범한 존재가 되고 싶지 않다, 라는 정열과 에너지는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때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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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만의 사업이 아니다

그런 마리아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 앙드레와의 만남이었다. 유명한 금융회사 맥킨지에서 20년 넘게 전략 컨설턴트를 맡고 있던 앙드레는, 때마침 중년을 맞이해 자신의 삶의 방식을 재조명하고 있었다. 컨설팅의 세계와는 잠시 거리를 두고, 커피 생산지를 돌아보며 사업 구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라 카페오텍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다들 스페셜티 커피 로스터를 열고 싶다라던지, 스페셜티 커피 다이렉트 트레이드를 하고 싶다는 비슷한 꿈을 꿈꾸고 있었어요.」

「그중 앙드레만은 달랐어요. 앙드레는 ‘사업을 하기 전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고,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들어보자. 이건 우리들만 하는 사업이 아니니까’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의 생각에 제 마음이 움직이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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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카페오텍에서 커피를 배운 뒤, 앙드레는 두 달에 걸쳐 전 세계의 로스터와 공동 로스터리, 커피 가게 등을 찾아다니는 여행에 떠났다. 지금의 스페셜티 커피 업계에 결여되어 있는 것, 즉 시장 수요를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모두가 공동 로스터리를 필요로 하던 상황이었습니다. 지금 커피업계는 서로 지식을 공유하고 성장할 수 있는 장소나 실험을 해볼 기회가 부족합니다. 저희는 그런 기회를 만들자는 생각에 The Beans on Fire를 열정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죠.」

공동 로스터리라고 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플랫폼의 성공을 확신하고 있던 마리아와 앙드레였지만, 정작 사용하는 유저는 첫 해에 3명, 두번째 해에 5명밖에 되지 않았다. 날개를 펼치지 못하던 그들의 비즈니스가 크게 성장한 계기가 된 것은 코로나 사태였다.

「좀 더 이치에 맞는 일을 하고 싶다, 머리 뿐만이 아니라 손도 사용하는 일을 하고 싶다, 라고 생각해 일을 그만두고 저희 공간에서 로스팅을 시작하는 사람이 단번에 증가했어요. 이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저희 가게에서 로스팅을 하길 원한다는 상담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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はじめて取引したコロンビアの生産者・Arnulfo Botina

영혼은 계속 살아있다

The Beans on Fire에서 사업 운영 전반을 맡고 있는 마리아의 가장 큰 꿈은, 생두 매입을 통한 모국의 발전이다. 실제로, 직거래를 통한 생두 구입처는 콜롬비아로 한정하고 있다.창사 이래 같은 생산자에게서 매년 정해진 가격에 커피를 사는 것은, 이들과의 장기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거래 지역을 3곳으로 좁히고 있는 것은, 자원을 집중시키는 것으로, 관련되는 커뮤니티에 큰 영향을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모국인 콜롬비아와 관계되는 사업을 하고 싶은 생각은, 저희 사업의 근간이 되고 있습니다.」

그 지역 중 하나가 가난한 소규모 생산자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남부 나리뇨이다. 해발 1,800미터의 화산 주위 일대에 커피 농장이 펼쳐져 있고, 그 풍족한 기후 풍토에서 뛰어난 커피가 탄생해 왔다. 그러나 최근 20여 년간 치안이 상당히 악화되며, 해외 바이어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지역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

「현지 생산자들이 스스로 해외에 커피를 팔기 어려웠기 때문에, 오랜 세월동안 그 품질에 걸맞지 않은 싼 가격에 매입이 되고 있었어요. 저희는 현재 나리뇨의 24가족과 협동해 그들의 커피를 적절한 값어치에 구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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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의 발전에 지향하는 그들의 관계는, 커피의 계속적인 구입에 머무르지 않는다. 또 다른 노력은, 지역의 아이들을 위한 교육의 투자이다.

농장 지역에서는, 도시로 나가는 젊은이가 많아, 생산자의 고령화와 후계자의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지역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마리아들은 매년 엔지니어와 함께 지역을 방문해, 로봇 공학을 배울 수 있는 일주일간의 커리큘럼을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하는 작업을, 더 쉽고 더 신뢰성이 높은 방법으로 대체하기 위한 수단을 가르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습도와 밀도, 우량 등의 간단한 데이터를 노트에 기록하는 대신, 로봇을 시키게 하는 것입니다.」

「커피의 품질을 관리하거나 향상시키는 데 로봇은 도움이 됩니다. 그렇게 전달함으로써 커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내, 농장을 계승하는 젊은 생산자를 늘려 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관련된 사람들의 수는 많지 않아도, 그들의 생활이 확실히 변해가는 것을 통해 저희는 가치를 찾아내고 있어요. 각 가정의 생활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프로젝트도 지역 사람들과 함께 추진한 보람이 있어, 나리뇨에서는 화장실과 수도 등 기본적인 생활 인프라가 서서히 갖춰져 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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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가 콜롬비아를 떠난 지 약 15년. 커피 농장을 처분한 아버지는 이제 커피업계와는 관련이 없다. 하지만, 독자적인 커리어를 쌓아 올린 자신의 아이들의 성장에, 아버지는 흐뭇해 하고 있다고 한다.

「저희 형제 셋은 아버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결론을 어물쩡거리고 있었어요. 하지만 마지막에는 모두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습니다. 지금은 아버지와 제 형제 3명 모두가, 최고의 결단을 내렸다고 회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버지는 처음엔 저희의 선택을 진심으로 기뻐할 순 없었을 거에요.」

「분명 아버지는 제가 진지하게 아버지와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준 것이겠지요. 자기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싶다고 하는 의지의 강함을 아버지께서는 이해해 준 것입니다. ‘부모가 원하는 자식의 삶은, 자식에게 있어 진정한 행복이라고는 할 수 없다. 중요한 건 아이 자신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런 부모의 모습을 가르쳐준 아버지처럼, 저도 딸에게 다가가고 싶어요.」

딸이 커피와 콜롬비아에 관련된 일을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된 마리아 아버지의 기쁨은 오죽했을까. 부모와 자식의 관계성에 있어 틀에 박힌 규칙이 없듯이, 로스팅에도 사업에도 틀에 박힌 성공패턴은 없다. 마리아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상대의 뜻을 존중하고 도전을 지지하는 그 영혼은, The Beans on Fire에 모이는 이들에게도 전파될 것이다.

글 : 나카미치 타츠야

MY FAVORITE COFFEE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내 한 잔'

콜롬비아의 고향집에 가서 아침에 아버지와 함께 마시는 커피 한 잔입니다. 아버지는 집안일은 전부 어머니에게 맡기는데, 그때만은 일찍 일어나 매우 기쁘게 커피를 끓여 주고는 하세요. 커피의 품질이 특별히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둘이서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경치를 바라보며 마시는 한잔은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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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is Frères

[영업시간]
Mon~Fri 8:00 - 18:00  Sat, Sun 9:00 - 1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