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서는 의식하여 얻으려 하지 않는 한 우리가 먹고 있는 것을 누가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 알 기회는 적다. 배경이 불확실한 상품 중에서 가격이나 품질, 맛과 자신의 취향을 고려한 후 무엇을 살지 결정한다. 그러한 구매 행동은 상사와 수입업체를 통해 커피 생두를 구입하는 로스터 사이에서도 여전히 일반적이다.
그 상관습에 대해 비인간적이라고 느끼고 있던 것이 미국은 뉴욕의 Parlor coffee를 창업한 딜런 에드워즈(Dillon Edwards)이다. 확실한 느낌을 찾아 여러 차례 생산자를 방문한 보람이 있었는데, 창업 12년 이상이 지난 지금은 사람 대 사람으로 교류하는 생산자로부터 직접 구입한 생두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Parlor Coffee의 역사는 뉴욕에는 인연도 연고도 없던 무명의 한 바리스타였던 22세의 딜런이 이주 후 2년 만에 브루클린의 이발소 한편에 간이 에스프레소 바를 열면서 시작되었다. 파격적인 접근 방식이었으나 18명의 풀타임 스태프가 일하는 규모로까지 사업을 성장시켜 온 그는 여전히 큰 야망을 품고 있다.
높은 이상을 포기하지 않는다
기술의 급속한 진화로 우리는 현격히 연결되기 쉬워졌다.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국가와 언어, 문화라고 하는 모든 경계선을 순간적으로 뛰어넘을 수 있게 되었지만, 대면 상호 작용 의미는 희미해졌고 인간관계는 쉽게 대체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오감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표준이 되고 있다.
그 흐름에 저항하듯 딜런은 사람과 직접 교류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물론 WhatsApp 등의 디지털 툴도 사용하지만, 코로나19 사태 기간을 제외하고 연평균 6번, 매번 3~4일 이상은 생산지에 머물면서 생산자와 서플라이어, 수출업체와의 관계성 구축에 힘써왔다. 당연히 비즈니스도 염두에 두고 있지만, 그들의 집에서 식사를 하고 밀접한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국가와 지역의 현재 상황, 비즈니스 과제, 그리고 그들의 사람됨을 알아본다. 이것이 생산자와 다이렉트 트레이드를 실시하는데 있어서 Parlor의 디폴트인 것이다.
생산자와의 가족적인 관계 구축을 지향해 온 Parlor의 대표적인 사례가 7년 넘게 거래를 이어오고 있는 콜롬비아의 마리아 베르셀리아(Maria Bercelia)다. Parlor에서는 그녀가 생산한 거의 모든 커피를 구입하고 있다.
“마리아는 향상심이 넘치는 노력가로 고품질의 커피를 계속 생산하기 위한 방법론을 확립했습니다. 저는 그녀를 한 사람의 사업가로 존경하고 있으며, 저에게 그녀는 또 다른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기도 합니다. 방문 시에는 언제나 그녀의 집에 머물면서 그녀가 해준 음식을 먹으며 정말 가족같이 지내고 있습니다. 그녀도 일 년에 2번 수확할 때마다 제가 방문하는 것을 기대하고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해도 최종적으로 비즈니스가 성립하지 않으면 이러한 관계는 유지할 수 없게 됩니다. ‘독특하고 고품질의 생두를 매입하고 로스팅하며 지속적으로 이익을 창출해야 한다’는 대전제를 벗어나면 자선 사업이 되어 버립니다. 어느 한쪽을 희생시키지 않는 적합한 방식을 항상 찾아야 합니다.”
생산자와의 다이렉트 트레이드에는 로망이 있지만, 중소 규모의 로스터에게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상사나 무역회사로부터 매입하는 경우에 비해 에너지나 시간, 자금 등 소비하는 자원은 훨씬 많고 불확실성도 높다. 그렇지만 이를 알면서도 손에 넣고 싶은 것이 딜런에게는 있는 것이다.
“다이렉트 트레이드를 실천하는 로스터에게 중요한 것은 품질이 안정되지 않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생산자가 완벽한 커피를 생산하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는데 어떤 형태로든 보답할 수 없다면 그들을 서포트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불성실한 것입니다. 돈다발을 흔들면 매년 같은 품질의 커피를 살 수 있다는 식의 단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훌륭한 커피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후와 토양, 품종 같은 조건을 모두 갖추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생산자의 막대한 노력과 헌신적인 태도가 필요합니다. 다른 농가와 비교하면 일에 대한 마리아의 자세와 인품은 일목요연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품질 향상에 임하고 우리와 함께 아낌없는 노력을 계속하고자 하는 마인드 세트(mind-set)를 가진 생산자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다만 마리아와 같은 ‘이상적인 생산자’는 많지 않습니다. 그런 생산자와 만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무리한 성장은 바라지 않는다
기업과 브랜드의 성장을 가속화하는 효과적인 전략 중 하나로 화이트 라벨링이 있다. 타사가 개발, 제조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자사 브랜드의 이름으로 판매하는 방법으로 미국에는 화이트 라벨링을 사용해 성장을 이뤄낸 로스터도 적지 않다. 그런 가운데 ‘Parlor는 한 번도 화이트 라벨링 판매에 손을 댄 적이 없다’며 딜런은 자랑스럽게 말한다.
“우리가 판매하는 상품에는 모두 Parlor Coffee의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좋고 나쁨을 따질 생각은 없지만, 화이트 라벨링을 시작하면 단순히 클라이언트의 요망에 맞추어 로스팅해 봉투에 담아내기만 하는 존재가 되어 회사가 달성하고자 하는 비전과 미션을 잃어버리기 쉬워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끄러운 언덕길에 서 있는 것과 같아서 한번 나쁜 쪽으로 굴러가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Parlor에서는 ‘클로즈드 세일 파트너’라고 부르는 도매처와의 관계를 세심하게 발전시켜 왔다. 판매하고 구매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컨설팅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들의 목표와 자신들의 이상을 맞춰가며 더 나은 커피 경험을 소비자에게 제공하도록 독려해 온 것이다.
“커피는 컵에 따라질 때까지 완성되지 않는 상품입니다. 커피의 가치를 올바르게 소비자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우리의 커피를 진지하게 제공하는 책임을 갖기를 그들에게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업 이후 무리한 성장을 하지 않고 믿을 수 있는 클라이언트에게만 판매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것입니다.”
커피가 로스팅되고 있는 장소에서 5m 떨어져 있는 곳에서 정성 들여 정확하게 내린 커피를 제공하는 소비자용 테이스팅 룸(현재 운영 중지 중. 2025년까지 재개 예정)을 운영한 것도 그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친밀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소비자가 브랜드와 커피에 대해 깊이 알 수 있는 장으로 기능하면서도 자신이 무엇을 소비하고 있는지 의식하여 물건을 구매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우리의 활동 대부분은 미국의 많은 비즈니스 스쿨에서 좋다고 여겨지는 전략이나 모델과는 역행하는 것입니다. 다만 그런 헌신적인 자세가 있었기에 우리의 지금이 있다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이 스타일을 바꿀 생각은 없습니다. 아주 조금이라도 우리의 방식이 세상을 더 좋게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직 보지 못한 세계로
딜런이 태어나 자란 곳은 미국 남부의 테네시주다. 집 주위에는 숲과 농장이 펼쳐져 있었으며 사람들은 한가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어린 시절에는 이러한 환경을 만끽했던 딜런이지만, 중학생 무렵에는 지루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 마음이 커지는 한편, 16살 때 운전면허를 따자마자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을 찾아 레코드점과 서점, 커피숍을 자주 찾게 되었다.
“저에게 커피는 지성주의의 상징이었습니다. 17, 18세기에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간 커피에는 프랑스 혁명 등의 사회 변혁을 가져오는 원천이 된 역사가 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맥주나 와인을 마시며 완전히 무뎌져 있던 사람들의 감각을 일깨워 준 것입니다. 커피가 우리의 마음에 의문을 낳고 생각하게 하였고 사람들과 소통하도록 이끌어 줌으로써 자유로운 사회는 형성되었습니다.”
아직 보지 못한 세계를 동경한 딜런은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미 대륙 반대편에 있는 오리건주 포틀랜드로 건너가 스텀프타운 커피(Stumptown Coffee)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스페셜티 커피에 대한 애정이 깊어지고 공급망 전체를 보는 시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타사에 앞서 생산자와의 다이렉트 트레이트를 추진하고 생산자와의 관계를 구축하는 데 주력한 스텀프타운 커피에서 일했기 때문이다. ‘커피 생산자는 위대한 와인 생산자와 마찬가지로 존경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라는 그들의 철학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그런 스텀프타운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뉴욕시에 진출한 것은 2009년의 일이었다. 팀의 일원이 되고 싶다며 나선 당시 19세의 딜런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뉴욕 땅을 밟았다. 등을 밀어준 것은 연상의 동료와 선배가 해준 ‘어리잖아. 만약 잘 안되면 언제든 포틀랜드로 돌아오면 돼’라는 응원이었다.
“의외로 ‘패션과 테크놀로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트렌드를 만들어내는 세계 도시’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뉴욕의 커피 문화는 개척되지 않았었습니다. 델리 커피라고 불리는 편리함과 저렴한 가격을 강점으로 하는 50센트(현재는 1달러 정도) 커피가 주류였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 바리스타이지만, 만약 뉴욕에서 커피 프로로서의 경력을 쌓고 싶다면 많은 단계를 밟아야 할 것이다. 일찍부터 그렇게 깨달은 딜런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불타오르는 것이 있었다. 이곳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스페셜티 커피 업계를 이끌어갈 만한 사람이 필요하다. 확신과도 비슷한 그 생각이 딜런을 무모해 보이는 도전으로 향하게 한 것이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준비되어 있다
아무것도 잃을 게 없으니 도전해 보자는 마음을 바탕으로 22세에 Parlor Coffee를 창업한 딜런에게 운영자금이 부족했던 처음 몇 년간은 어떻게 보면 ‘꿈과 기도만으로 운영하던’ 시기였다. 이후 숱한 어려움을 이겨낸 11년 사이에 뉴욕의 스페셜티 커피 시장은 변화했으며 독특한 로스터와 소규모 로스터가 곳곳에 생겨났다.
“저는 지금도 뉴욕이 세계 유수의 커피 도시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는 저의 개인적인 사명으로 앞으로도 계속 노력해 갈 것입니다.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이 즐겨주는 것, 감사해 주는 것을 만들어낸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커피의 매력적인 부분이자 고뇌하게 만드는 부분이기도 한 것은 한 장소에서 완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온두라스의 깊은 산속에서 소중히 길러져 완벽한 생산 프로세스를 거친 커피라도 이는 아직 원재료일 뿐입니다. 생산자의 수고와 노력에 보답하기 위해서는 로스터와 바리스타, 소비자가 신중하게 로스팅하고 추출할 필요가 있습니다.
생산자가 제대로 일하면 커피의 품질은 훌륭해질 것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일하면 소비자는 그 커피를 다시 사고 싶어 하고 생산자를 지원하고 싶을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서큘러 이코노미(순환 경제)입니다.
우리의 역할은 시장에서 인정받아야 할 커피를 생산하고 있는데도 기회를 얻지 못한 생산자와 소비자를 이어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파나마의 라 에스메랄다 농장(La Esmeralda farm)처럼 이미 유명하고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는 생산자는 우리가 없어도 성공할 것입니다.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은 우리와 같은 존재를 필요로 하는 농가이자 생산자입니다. 우리가 생두를 구입하고 있는 모든 국가에 가족이라고 느낄 수 있는 생산자가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저의 커다란 야망 중 하나입니다.
결국 저는 약자인 그들의 환경에 스스로를 겹쳐보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검소한 집에서 자랐고 뉴욕에서는 무명의 바리스타에 지나지 않았지만, 기회를 주는 사람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높은 모티베이션을 유지하고 끈질기게 노력을 계속해 오는 것을 통해 사람의 신뢰를 얻어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타고 나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노력과 헌신적인 태도로 그런 핸디캡을 극복하려는 생산자의 편에 서고자 하는 마음이 제 뿌리에는 있는 것입니다.”
MY FAVORITE COFFEE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내 한 잔'
우리의 로스터리에서 우리의 커피를 마시는 기쁨보다 좋은 것은 없습니다. 이 공간에는 비즈니스를 만들어낸 나날의 역사와 추억이 많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다음으로 좋아하는 것은 토요일 아침에 가족과 함께 마시는 커피입니다. 그날은 아무 예정이 없어 사랑하는 사람들과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 마시는 한 잔도 맛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