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티 커피의 문화가 생소하던 2009년에 창업을 한 커피 리브레. 현재는 서울에 4점포, 상하이에 1점포를 두어,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로스터리 & 커피 회사 중 하나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결코 그 길이 순탄했던 것 뿐만은 아니었다. 스스로를 커피 덕후라고 칭하는 창업자 서필훈씨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문제아가 아니라 개성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다
커피 리브레를 찾으면, 카페답지 않은 로고 디자인이 눈에 들어온다. 간판이나 패키지, 벽에 걸린 그림 등, 가게의 곳곳에서, 손님들은 복면 레슬러를 접하게 된다.
「미국의 ‘나쵸 리브레’ 라는 영화의 주인공을 모티브로 했어요. 수도원에서 신부를 맡고 있는 주인공 이그나시오는, 충분한 식비를 벌지 못해, 배고픈 고아들을 위해 밤에는 복면 레슬러로 돈을 벌러 떠나게 됩니다. 낮과 밤에 다른 얼굴을 가지게 되는 주인공이지만, 프로 정신으로 남을 도와줌으로써 자신도 행복을 느끼고 있었지요. 그런 멋진 스토리를 접했는데, 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해서 더욱 깊은 감동을 받았어요.」
어릴 때부터 극단적인 성격을 가져, 자신이 이상한 사람은 아닌지, 정신적인 문제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던 서필훈씨. 그러던 그는 나쵸 리브레의 주인공의 모습을 보고 감정이입이 되어 버린 것이다.
「대학생 때 점쟁이가 ‘넌 이중적이야’ 라는 말을 했었어요. 실제로도, 저는 굉장히 논리적이지만 한편으로 굉장히 감정적이에요. 또 이타적이면서 이기적이고, 외향적이면서 내성적이고, 오만하면서도 겸허한 인간이에요.」
어릴 적 학교에서 싸움에 미쳐, 문제아였던 서필훈씨. 그가 간신히 퇴학을 모면한 것은 학업 성적이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부모님과 교사들에게 있어 서필훈씨는 감당하기 힘든 존재였고, 서필훈씨조차 자신을 주체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헤르만 헤세의 저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를 읽고 깊은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고.
「이성과 감성이 잘 조화된다는 주제인데요, 그 책을 읽으면서 제 극단적인 이중성도 하나의 성격이나 개성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머지않아 그 개성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어요.」
손맛을 느낄 수 있는 분야를 찾아
철학을 연구하는 대학교수인 아버지를 둔 서필훈씨. 그가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겠다고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특히 역사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많아 대학, 대학원에서는 유럽역사를 전공했다고 한다. 하지만 서필훈씨는 단골로 다니던 카페에서 졸업 후 일하기 시작하며 운명이 바뀌게 되었다.
「로스팅이든 추출이든, 커피 콩의 후각, 청각, 촉감 등 오감을 최대한 활용해 일할 수 있는 점이 너무 좋았고, 일을 하며 보람을 느꼈어요. 책을 읽고 논문을 쓸 때, 눈과 머리만 쓰던 학계와는 달리, 육체적으로 다양한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커피 업계가 현실감있다고 느꼈죠.」
서필훈씨가 커피 리브레를 창업한 뒤 1년 중 3, 4개월은 생산지에서 지내온 것도 거기에 현실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생산지의 현지인도, 커피도, 자연도, 음식도 너무 좋아해요. 그게 제 정열을 끓어오르게 하는 원천입니다. 한국 사람들에게, 산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누가 이 커피를 만들었는지, 생산자는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알려주고 싶어요. 그러면서도 생산자들에겐 한국 사람들이 어떤 커피를 즐기고 있고, 왜 그 커피를 좋아하는지 알려주고 싶답니다. 즉,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메신저이고 싶어요.」
서필훈씨가 생산지에 오래 머무는 목적은, 비즈니스를 위해 커피에 관한 더 많은 정보와 경험을 얻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지인들과 관계를 쌓아 그들의 삶과 저희들의 미래에 대해 깊이 배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생산지에 오래 머무르고 있어요. 편리한 것에 둘러싸여 있는 한국에서,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생활을 하다 보면, 창의력이 메마르게 되어요. 한편, 전화도, 이메일도, 친구도 없는 생산지에서 지내면 자유로운 시간을 많이 확보할 수 있지요.」
「방해받지 않고 스스로의 내면과 차분히 대화하는 시간은 제게 매우 유익했답니다. 마음이 평온한 상태에서 꿈을 꾸고, 삶의 방식을 깊게 고찰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실제로 산지에서 돌아올 때마다, 항상 제가 변해있다는 것을 실감해요. 세상을 바꿀 정도로 바뀌게 되는건 아니지만, 제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고, 회사 직원이나 파트너 생산자들에게 더 좋은 미래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믿는 것이 첫걸음
생산자를 파트너라고 부르는 서필훈씨는, 이들과 장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저희는 파트너들로부터 일정량의 커피를 계속 사려고 하고 있어요. 파트너들은 자연과 함께 살아가므로, 생산량이나 품질이 변화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커핑 스코어에 따라서 살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단순한 쇼핑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쇼핑같은 느낌으로 커피에 접근하면 소규모 생산자는 살아남을 수 없을 거에요. 설령 품질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생두에 적합한 로스팅 프로파일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고객에게 판매할만한 레벨로 품질을 높이는 것이 저희의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질이 좋지 않은 커피가 도착할 때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저희는 다음 해에도 계속 사고 싶은 생각은 있습니다. 그렇기에 먼저 파트너에게 이유를 물어봐요. 잔머리를 굴린 것이라면 관계를 끊어 버리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지식이나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에요. 그러면 저희는 커피 콩의 발효 방법을 바꾸거나, 건조 시간을 늘리도록 의뢰해 개선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합니다. 만약 그래도 품질이 일정 기준을 넘지 못하면 커머셜 커피를 취급하는 회사에 저렴하게 판매합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우선 파트너를 믿는 것입니다. 신뢰를 통해 변화와 발전을 볼 수 있으면 거래를 계속하고, 볼 수 없으면 거래를 중지합니다. 파트너를 믿지 않으면, 이 사업은 비참한 말로를 걸을 거에요.」
「이런 관계를 통해서, 파트너의 생활 수준이 높아져 가는 모습을 보고, 서로 성장해 가는 것을 실감할 때 저는 큰 행복을 느낍니다. 그들을 뒷받침하고 싶은 마음이 저의 원동력이에요. 커피 업계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은 행복해야 하고,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생산국에 스페셜티 커피 문화를
서필훈씨가 과테말라의 파트너 생산자와 공동 투자를 통해 과테말라에 로스터리 & 카페를 연 것은 2017년의 일이었다. 그 뒤에는 스페셜티 커피업계의 현주소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다.
「스페셜티 커피는 소비되는 나라들에서만 인기가 높아지고 있어, 극히 일부의 커피 생산자들만 큰 이익을 보고 있어요. 미국과 유럽의 스페셜티 커피 관계자들은 ‘관계성’, ‘우정’, ‘지속 가능한 발전’ 등의 표현을 많이 쓰지만, 제게는 그 사람들 중 일부는 과장을 하고 있거나 겉멋만 들린 것 처럼 들렸습니다.」
「현실적으로 생산국에 살고 있는 일반인 대부분은 스페셜티 커피를 즐길 기회가 없습니다. 스페셜티 커피를 제공하는 가게가 없고, 로스팅이나 추출에 필요한 기술도, 적절한 커피 머신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해요. 질 좋은 커피는 모두 수출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현지에서 수익성이 없는 스페셜티 커피 사업에 투자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기 마련이지요.」
그 현실을 알고 서필훈씨는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현지인들과 스페셜티 커피 문화를 공유하고 싶다, 당신 나라의 생산자들은 세계 제일의 커피를 만들고 있다, 자신들의 커피에 자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라고 전달하고 싶었던 서필훈씨. 그것이 과테말라에 로스터리 & 카페를 차리게 된 원동력이 된 것이다.
「코로나가 유행하기 전까지, 그곳에서 무료 커핑 이벤트를 매주 열었던 것도 스페셜티 커피 문화를 확산시키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스페셜티 커피를 이해시키고, 기술을 전해주고 싶었지요.」 가게에는 많은 커피 생산자와 바리스타, 바이어들이 찾는 등 연일 북적거렸다고 한다.
「이제 과테말라의 많은 사람들이 저희 커피를 무척 좋아합니다. 커피 리브레는 이 투자를 통해 전혀 이익을 얻지 못했지만, 과테말라의 스페셜티 커피 문화가 커피 리브레를 통해 발전했다는 것을, 현지인들에게 인식시키고 싶다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어요. 그런 의미에서도, 이 프로젝트는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초, 회사 지분의 50%를 과테말라의 파트너에게 넘길 정도로, 저는 지금도 이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미래는 신만이 알고 계신다
커피 리브레는 한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스페셜티 커피 기업 중 하나로 꼽히지만, 2009년의 창업 후 몇 년간은 겨우 연명해 왔던 상태였다고 한다. 2012년에 겨우 1호점을 연 후에도 고생이 많았는데, 스페셜티 커피는 왜 다른 커피보다 비싼지, 왜 특별한지를 알리기 위해 몇 년 동안 거의 매일 무료로 커피를 시음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사업을 계속할 수 있을 만한 최소한의 수익조차 없어 경제적인 불안도 있었어요.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한국에서 스페셜티 커피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제가 선택한 길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라는 생각이 스쳐가는 것이었어요. 커피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바탕으로 조금만 기다려보자고 다짐하며 하루하루를 보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새 스페셜티 커피 붐이 일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숨통이 트였어요.」
그런 와중에도, 서필훈씨는 부모나 투자자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은 적이 없다. 결코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커피 농장을 구입하거나, 과테말라에서 카페를 열거나 해 온 서필훈씨. 커피 농가의 아이들이 많은 인도 여학생 400명에 대한 기부도 계속하고 있고, 스태프들에게는 업계 평균 이상의 월급, 건강진단이나 유급휴가(2년에 1회, 2주, 300만원)를 제공하는 등, 가능한 한 풍요로운 복리후생을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커피에 관한 책을 많이 출판해 왔으며, 커피에 관한 학술적 기사를 500여 개 이상 번역해 웹사이트를 통해 무료로 공개하는 등, 다양하고 값진 노력을 해왔다.
「저희 회사는 수익성이 없어보이는 방법으로 사업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저를 미친 사람, 혹은 이상주의적이고 어리석은 사업가로 여기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확실히, 저희가 하는 방식은 리스크도 크고, 성장을 위한다면 택할 방법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이게 제가 잘하는 일이고 즐거워하는 일이에요.」
자신보다 주위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서필훈씨의 삶. 한편으로는 헌신적이고 자기희생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저로서는 열심히 일하고 있다기보다는, 제 인생을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누리고 있다는 게 정확한 것 같아요. 커피와 관련된 제 친구들이 종종 코로나 때문에 지금 생산지에 못 가서 죽을 맛 아니냐는 말을 하곤 합니다(웃음). 인생은 짧은데, 제가 열광하지 못하는 일에 시간을 보내고 싶지는 않아요. 그래서 만약 커피에 대한 열정을 잃게 된다면, 다시 뭔가 새로운 것과 리스키한 것에 도전하게 되겠죠.」
상호명으로 사용하고 있는 Libre는 스페인어로 자유를 가리키는 말이다. 과거 극단적이고 비상식적인 자신의 행동을 주체하지 못해 고민하던 서필훈씨가 찾고 있었던 것은, 무엇에도 속박받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이었을 것이다.
「목표나 계획을 정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회사에서도 내년의 계획을 세우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열광할 수 있는 것이 제 인생에는 필요하지요. 제가 커피와 만나지 못했다면 나쁜 사람이 되었을 지도 몰라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처럼 쌓인 커피업계. 인생을 활활 태우며 살아가는 서필훈씨에게 안성맞춤인 무대일지도 모른다. 오감을 전부 활용하는 커피의 로스팅이나 추출,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는 생산지의 현실, 마음이 통하는 생산자들과의 관계성. 이러한 커피의 세계에서만 맛볼 수 있는 압도적인 현실감이, 서필훈씨를 긍정적인 광기로 물들이고 있을 것이리라.
MY FAVORITE COFFEE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내 한 잔'
함께 일하는 파트너가 만들어준 커피를 마시며, 그들의 생활 수준이나 커피의 품질이 향상되어 가는 것을 느낄 때가 가장 행복하답니다.
이 로스터 커피 콩 구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