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fe Bal Musette 카페발뮤제트는 가와구치 치아키

Caffe Bal Musette

카페발뮤제트는 가와구치 치아키

「내일은 좀더 나아지고싶다」 끝이 안보이는 커피의 탐구

도쿄에서 재즈 뮤지션으로 활동하던 가와구치 치아키가 31살에 자기고장·센다이로 돌아와 카페발뮤제트를 오픈한 것은 다음해 1996년의 일. 가와구치는 이탈리아의 바르문화에 강한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당시의 일본에서는 드문 자가로스팅한 신선한 커피콩으로 본격적인 에스프레소를 제공하는 매장을 시작했다. 음악에서 커피로 도전하는 필드는 바뀌어도 배움을 계속해서 추구하는 자세는 변함이 없다. 그원동력은 무엇일까? ※글중 경칭 생략

이탈리아의바르문화에매료되어

느티나무 가로수가 아름다운 버스거리에 카페발뮤제트는 있다. 테라스의 타프나 의자의 빨간색이 액센트가 되어 어딘가 이탈리아의 길목을 생각케하는 그 가게는 들어가서 바로 오른쪽에 로스팅기, 카운터에는 라 마르족코사의 에스프레소머신이 준비되있다. 누구나 들어가기 쉽게 점원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지는 카운터석은 일부러 놓지 않고, 테이블석만으로의 매장안는 개점당시부터 25년이상 지난 지금도 거의 실내장식이 바뀌지 않았다. 인테리어나 집기 하나하나를 가와구치가 스스로 엄선하여 정했다고 한다.

가와구치는 대학시절부터 스튜디오 뮤지션으로 일했고 졸업후는 재즈스쿨에 다니면서 자신의 밴드활동을 계속했다고한다. 늘 음악에 중독된 가와구치가 센다이에서 커피숍을 시작한 계기가 된 것이 1994년의 이탈리아 여행이었다.

「로마에있는 『다짜도로』라는 지금도 건재하는 바르에서 처음 바르문화를 체험했어요. 카운터를 둘러싸고 아저씨들이 축구얘기로 꽃을 피우며, 조그만 컵으로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있다. 정말 멋진 어른들의 공간에서 부산히 움직이는 초로의 바리스타가 손님의 자잘한 오더를 하나하나 구별하며 굉장한 스피드로 정확하게 내가는 거예요. 그 모습이 되게 멋있었다. 에스프레소도 대단히 맛있어서 일본에서 마시던 에스프레소 닮은것과는 전혀 달랐어요」

게다가 다짜도로는 이탈리아에서는 드물게 자가배전한 콩의 판매도 하는 바르였다.

「지금이야 로스테리어따위의 말이 쓰일정도로 자가배전한 커피를 매장에서 제공하면서 옆에서 콩도 판매하는 스타일은 일본에서도 정통적으로 되었습니다. 그래도 당시는 그것이 드문일이어서 본격적인 에스프레소를 내는 매장을 일본에서 하면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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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언제나곁에있었다

왜 여행처에서 바르문화의 체험만으로 그렇게까지 커피에 흥미를 가진 것일까? 사실은 가와구치에게 커피는 어렸을 때부터 당연하게 곁에있는 것이었다.

「사촌이 앤틱가구점을 하면서 점포일각에서 자가배전커피숍도 했었어요. 그 매장은 나의 놀이터로 초등학생때부터 반은 억지로 커피를 내리게하거나, 커피에 대해 여러가지로 가르쳐주었습니다」

더욱이 작년에 자신과 커피를 이은 원점이 다른데 있는것을 가와구치는 알았다. 어머니가 타계했을 때 오랜만에 만난 사촌이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이곳의 앤틱가구에 둘러싸여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싶다』라고 너의 어머니가 말한것을 계기로 커피숍을 시작했어. 그 한마디가 없었다면 커피집따위 안했지」. 사촌은 그렇게 말했다. 즉 모든것의 시작은 가와구치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운명과 인연으로 사는 것이구나……하고 느꼈어요」

자신의 운명이나 인연에 이끌리듯이 가와구치는 중학생이 되자 역시 갓 구운쪽이 맛있다고 자택의 부엌에서 로스팅도 시작했다. 그때쯤부터 자신의 커피는 자신이 구워서 스스로 내리게 되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바르문화와 만났을 때 오랜세월의 로스팅경험을 살려서 가게를 해보고싶다는 생각이 부풀어오르고 하나의 꿈이 되었다. 그리고 다음 1995년에 일어난 지하철 사린사건이 센다이로 돌아가는 결단으로 이어졌다. 그날 가와구치는 우연히 일이 쉬는날이었으나 사건이 난곳은 평소에 잘 사용하는 노선이었다.

「그리고 사건후의 도쿄에는 어쩐지 무시무시한 분위기감이 있었습니다. 물건이 떨어져 있는 차량에는 아무도 안탄다거나, 빈깡통이 쓰러지기만 해도 고함치며 도망가는 사람도 있고 도쿄는 이젠 살 곳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던 참에 도로확장을 위해 본가가 퇴거해야한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그 타이밍에 과감하게 유턴하여 주거겸 점포라는 형태로 다시 집을지어서 매장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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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하지않았다면내가한다

이렇게 해서 1996년, 카페발뮤제트를 오픈했다. 센다이시내의 신흥주택지에서 일본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본격적인 에스프레소를 자가재배한 신선한 커피콩으로 추출한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무모한 도전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업자 분한테 크게 반대를 받았습니다 (웃음). 마침 스타벅스가 기세를 타기 시작한 시기였는데 『에스프레소따위는 단순한 유행이니 곧 사라진다』고 모두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바르문화의 활기 있는 광경을 보았으므로 그런 일은 절대로 없다고 생각했다. 갓볶은 콩으로하면 틀림없이 저 맛에 가까워진다는 확신도 있었고, 오히려 일본에서 아무도 안한다면 내가 해주자는 정도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당황하지 않고, 주택가의 한 구석에서 편안히 매장을 하면서, 자신의 커피 스타일을 확립해 가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인생은 예상한 대로는 되지 않는것이다. 가와구치가 매장을 낸 신흥주택지에는 우연히 은퇴한 시니어 세대가 많이 살았다. 그 속에는 상사 등에서 유럽에 오래 생활했던 사람이 많아서 가와구치가 만드는 에스프레소나 카푸치노를 마시고『맛있다!』『유럽생각이 난다』라고 높게 평가해 준 것이다. 거기에서 단숨에 소문이 나고 몇군데 매스컴에도 다루어지게되어 순식간에 인기점이 되었다. 스타일을 차분하게 확립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이다.

그 기세로 3년후에는 오피스가에 서서 마시는 스타일의 2점포째를 오픈. 디저트나 런치를 충실하게 했더니 주목도가 더 올라가서 점점 더 바빠졌다.

「2점포를 하면 24시간으로는 모자랄 정도입니다. 인풋하기위한 시간따위란 전혀 없어요. 거기에 어느틈엔지 커피보다도 디저트나 런치의 취재가 많아졌지요『무엇때문에 매장을 하는 거였지?』하는 의문이 들게 되었어요」

그런 때에 바리스타의 세계대회(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 이하WBC)에 스태프로서 참가하지 않겠느냐는 부름을 받았다. 매장의 본연의 자세에 의문을 느끼고 있던차에, 바빠서 그런 여유는 전혀 없었으나 스태프에게 신신 당부를 하며 가기로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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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인풋하는것에시간을보낸다

이탈리아의 트리에스테에서 개최된 2004년의 WBC는 가와구치의 커피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먼저 에스프레소 맛의 정의가 자신 내부에서 크게 바뀐 것입니다. 어쨌든간에 달고, 산미와의 밸런스가 좋고, 쓴 맛은 거의 없다. 말하자면 에스프레소를 추출하기 위한 룰도 자신이 배운것과 전혀 달랐습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지금까지 한 로스팅이나 추출의 룰은 전부 봉인하고, 1부터 다시 시작했어요. 과 동시에 일본에는 전통적인 정보밖에 전해지지 않은것을 알고깜짝 놀랐습니다」

게다가 세계의 톱 바리스타와의 사이에 뚜렷한 차이도 느꼈다고 한다.

「한잔에 쏟는 세계챔피언의 열량을 눈앞에서 본 것입니다. 이미 충분히 맛있는 커피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득히 위에있는 사람들이 보여왔다『동북에서 제일이 되고싶다」라고 말했던 자신이 굉장히 조그맣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런치나 디저트에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오피스가에 낸 매장은 닫았습니다. 빈 시간은 해외로 배우러가는데 쓰기로 했습니다」

가와구치는 해외가 아니면 최신정보는 얻을 수 없다며 세계대회는 물론 여기저기의 커피 쇼를 구경하고, 커피생산지에도 찾아가 보게 되었다.

「매장을 크게하지 않느냐고 자주 묻습니다만 그것은 나이를 먹은후에 해도좋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산지에는 표고가 높은 곳이 많으므로 어느정도 체력이 있을 때 가고싶다. 죽을때까지 커피콩은 로스팅할 테니까 움직일 수 있는동안은 돈벌이 보다 나간다. 인풋하는 것에 시간을 보내고싶습니다」

가와구치의 배우는 자세는 철저하다. 예를 들면 재팬 바리스타 챔피언십의 심사위원을 의뢰받으면 자발적으로 미국 지구대회를 돌아 비디오카메라로 경기풍경을 촬영하고 실제로 어느 케이스에 어떤 점수를 받는지를 공부했다. 여기저기 대회에 출몰하여 열심히 예선부터 촬영하므로, 서서히 미디어관계자와 친해져서 어느덧 미디어 패스를 받게 되었다고 하니 재미있다.

또 WBC에서 결승에 남는 사람들에 북유럽쪽이 많은 것을 알아차리자 왜 높은 기술과 양질의 커피콩이 모이는지를 찾기위해 매년 북유럽을 방문했다. 세계 챔피언을 많이 배출하는 덴마크·코펜하겐의 바리스타 아카데미를 돌연히 방문하고, 견학한 일도 있다고 한다.

더욱이 이런 체험과 얻은 정보를 블로그에 발신하게 되자 전국의 젊은 로스터와 바리스타로부터「찍어온 영상을 전부 보여달라」「세계대회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싶다」라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가와구치는 자신의 기술이나 경험을 아낌없이 공유하고, 상담에 응했다. 때로는 같이 해외여행을 간적도 있다고한다. 나중에 센다이의 전문학교에서 바리스타를 양성하는 커리큘럼의 개발과 강사를 맡게도 되었다. 항상 개방적인 가와구치에게서 다양한 것을 배우고, 영향을 받은 로스터는 많다고 한다.

「세계대회에서 톱 애슬리트들에게 말을 걸었을 때의 대응이 엄청 개방적이었어요. 보통이면 차갑게 응대해도 이상하지 안잖아요? 그렇지만 챔피언클래스 사람들은 그래도 아직 위를보고 있으므로 지금 자신이 하고있는 것따위는 얼마든지 가르쳐주고, 아무것도 숨기려하지 않아요『너는 어떻게 로스팅해서 어떤 에스프레소를 내리고 있어? 좀 마시게 해줘』라는 느낌으로 부담없이 대해준다. 나도 이렇게 될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가르치는 일은 자신에게 배움도 되는것이고요」

가와구치는 일본의 커피업계의 최첨단을 달리면서도 항상 배후 역할을 해온것 같다. 원래 뮤지션으로 무대에 오르던 사람이다. 어딘가 부족하게 느끼지 않았을까?

「그것보다도 다음 목표로 안가면 안 될, 아직 만나지 않으면 안 될 사람들이 있다는 곳으로, 항상 마음이 향해있는 느낌이지요. 커피는 매년 업데이트하기 때문에 쫓아가는 보람이 있고, 막다른 곳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표면에 드러나고 싶은 마음은 그다지 없고, 더 커피를 추구하고싶은 감각입니다. 지금도 나는 수행중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활력이 넘치는 가와구치이지만「이렇게 전세계로 가게되리라고는 그다지 생각을 안해서」라고 되돌아본다.

「커피집의 아버지는 매장의 안쪽에서 신문을 펼치고 조용히 앉아있는 이미지였습니다. 뮤지션을 관두고 편안히 매장을 하려고 본가에 돌아온 것이고, 나도 여기에서 끝나는구나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전혀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알면알수록 커피업계의 보이지 않았던 곳에 접촉하는 놀라움이 있어서 알고나니까 몸이 제멋대로 움직여버리고 있는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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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에는사람을분발하게하는무엇인가가있다

가와구치에게 있어서 커피와 접하게 된 초등학생때부터 몇십년이나 싫증나지 않는다는 커피의 매력은 무엇일까?

「커피는 항상 생활에 붙어있는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게나, 특별한 감이 있는것이아니예요. 우리들이 지금 코로나사태에 있어도 어떻게든 매장을 해갈 수 있는것도 모두가 커피정도는 맛있는 것으로 마시고싶다고, 콩을 사러와주기때문입니다. 커피는 그런 존재구나, 이상한 인력이 있구나하고 다시한번 느껴요」

확실히 많은 사람은 매일같이 커피를 마신다. 일할 때는 집중하기위해서, 쉬는시간에는 한숨 돌리기위해서.

「커피에는 사람을 분발하게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말로 표현이 안됩니다만 음악과 같은 『파동』이 있다고 느껴요.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사람은 그것을 느껴며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파동」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것이다. 커피콩이라는 소재자체의 심오함. 향기나 풍미. 키우는 사람에게서 나르는 사람, 로스팅하는 사람, 추출하는 사람, 그리고 마시는 사람으로,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서 자아내는 프로세스나 겹쳐가는 생각. 단 한잔의 커피가 컵에 따라지기까지는 장대한 이야기가 있다.

「커피는 내일을 맞이하기 위한 인스피레이션이며 모티프 바로 그것입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음악도 그랬습니다. 오늘의 연주에는 늘 만족하지 못하고『내일은 좀더 나은 내가 되어있고싶다』라고 계속해서 생각했다. 그것은 커피집이 된 지금도 변함없는 나의 모티베이션이지요. 오늘 로스팅한 콩도 물론 맛있다. 그렇지만 좀 더 맛있게 할 수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늘 한다. 그생각이 존속하므로 내일도 또 생두에 불을 붙이는것이 아닐까요」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모레. 항상 베스트를 목표로 하면서도 베스트의 자신이 보인 순간, 가와구치는 벌써 그다음을 본다. 과거는 물론이고, 현재에조차 머무르지 않는「더 나은 자신」은 갱신을 계속한다. 자신의 가능성과 커피의 가능성을 믿고 있는 가와구치의 탐구에 끝은 없다.

글: 히라카와 유키
사진: Kenichi Aikawa

MY FAVORITE COFFEE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내 한 잔'

커피를 마시러 다니고 있으면 큰컵이라도 어느사이에 다 마셔버리는 커피와 만납니다. 맛있는 커피는 정말 많습니다만 원샷할 수있는 커피에는 인간에게 필요한 무언가가 꽉차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원샷할 수 있는 커피」가 내가 목표로 하는 커피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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