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해 일을 할 작정이었다’ 시야가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뀐다
대학 1학년, 19살에 계약 사원으로 애플의 리테일(영업) 부서에 입사한 세키네 다이고씨. 2년차부터 두각을 나타내, 매출, 충성 고객 관리 모두 최우수 10%에 랭크인하였다. 그 후, 고객 지원 부서에서도, 충성 고객 관리도에서 아시아 지역 사원 약 4000명중 1위를 달성하였다. 대학 졸업 후, 영업직으로 입사한 사이버 에이전트 인터넷광고사업본부. 그 곳에서도 우수 실적자로 활약하였다. 화려한 경력을 거쳐 2021년 9월 TYPICA에 입사했고, 2022년 1월에는 대만 사업부 책임자가 된 세키네 다이고 씨에게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하 존칭 생략
숫자로서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여기는 내가 목표로 해 온 장소가 아니다’. 2021년 1월 사이버 에이전트에서 열린 월말 마감일날, 우수 실적자로 표창을 받은 세키네는 단상에서 연설을 하면서 그런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이키 재팬의 본사 마케팅부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에서 한 프로젝트에 선발돼 인턴을 한 경험을 통해, 디지털 없이는 브랜드를 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세키네가 사이버 에이전트에 입사한 것은 2018년의 일이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각 업계 기업을 대상으로 광고영업을 했으나, 처음 1년 반은 딱히 이렇다 할 성과를 얻을 수 없었다.
그 후, 상사를 따라 부서를 이동한 것을 계기로, 세키네는 크게 도약할 수 있게 된다. 13개월 연속으로 영업 목표를 크게 뛰어넘은 것이었다. 회사 내의 영업사원 300여 명 중에서도 최우수 20인에 늘 이름을 올리는 등, 빛나는 존재가 되었다.
「잠자는 시간도 아껴가며 정신없이 일했던 것은, 숫자로 정해진 목표를 달성하는 데 모든 정신을 쏟았기 때문이에요. 숫자로서 실력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언젠가 창업했을 때 도움이 되길 바랬답니다.」
그러나 세키네는 깨닫고 만다. 입사 이후 3년간 꿈꿔 온 매니저 포지션은 자신이 원하던 모습이 아니었던 것이다.
「시부야 한복판에 있는 고층 빌딩의 사무실에서 똑똑한 동료들과 함께 화려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그때 하던 일은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어요. 뭔가에 쫓기며 일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에, 밝은 자세로 일을 하도록 스스로를 제어할 수 밖에 없었어요.」
가슴이 설레어 입사를 결정하다
세키네가 사이버 에이전트를 퇴직하기 전인 2021년 5월. 60일 가량의 유급휴가를 활용하여 10년 만에 만난 죽마고우와 시코쿠 지역을 여행하게 된다. 그리고 그 시간은 세키네의 잊혀가던 감각을 되살렸다.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서 차를 몰며 ‘우리 이런 거 좋아했었잖아’ 하고 추억을 되새겼어요. 어린 시절로 잠시나마 돌아가는 듯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어요. 10년만에 만났다는 것을 한순간에 잊어버릴 정도로 기분이 좋았습니다.」
여행길에 우연히 도착한 히로시마 오노미치. 그 숙소에서 만난 사람들도 세키네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 갔다.
「오노미치를 무대로 한 영화 ‘역광’의 감독인 25세(당시)의 스도 렌 씨를 비롯해 자신의 색깔을 표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자극을 받았어요. 진심을 다해, 자신이 생각한 방향으로, 순수하게 달려가고 싶은 열망이 솟아올랐어요.」
동시에 제가 계속 ‘엘리트’가 되려고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언제부터인가 1위를 목표로 하는 것이 제 인생의 목적이 되었고, 그것이 상식이라고 제 자신을 타일렀어요. 그래서 정해진 길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두려움이 늘 마음속 한 켠에 있었어요.」
가난에 빼앗긴 자유
사이버 에이전트에서 최선을 다하던 세키네. 그 근원에는 ‘훌륭한 남자가 되야만 한다’ 라는 굳은 신념이 있었다.
이야기는 약 1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입시에 실패해, 가장 가기 싫었던 니혼대학에 입학한 세키네. 그는 단지 니혼대 졸업생으로 끝나기 싫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학교의 운동 실기는 1등이 되는 것이 당연했고, 농구에서는 요코하마시의 올스타에 선출되어 국가대표 후보급 선수에 제 이름을 올리고는 했어요. 그런 중고등학교 시절처럼 가장 인기 있는 존재로 있고 싶었고, 부자가 돼서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예를 들면, 제 아이가 스위스의 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주저 없이 보낼 수 있는 경제 수준을 꿈꿨습니다. 연봉은 1억엔 이상, 적어도 5천만엔급 레벨을 목표로 했지요.」
당시 세키네에게 있어, ‘훌륭한 남자 = 돈을 벌 수 있는 남자’ 였다. 목표로 하는 연봉에 간신히 도달할 수 있는 직업으로서, 「해외에 부임하는 종합상사의 주재원」을 목표로 했지만, 니혼대학을 졸업해서는 일본의 재벌계 종합상사에 입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때는 낙담한 세키네였지만, 빠르게 마음을 추스리고 새로운 목표를 찾아나가게 된다. 벤처 기업에서 인턴을 해서, 어떤 회사라도 합격할 수 있는 인재가 되는 것은 어떨까? 창업을 하면 될까? 외자계 기업에 입사하여 실력으로 돈을 벌까? 등등.. 훌륭한 남자가 되기 위한 정답을 찾고 있는 가운데, 세키네는 애플과 운명의 만남을 갖게 된다.
「새로운 노트북을 사려고 애플 스토어에 들렀을 뿐이었어요. 하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머리 색도, 국적도, 나이도 다양했지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모두 생생하고 즐겁게 일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리고 그것은 비즈니스가 안정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요. 그것을 제 눈으로 직접 본 순간, 저는 비로소 그런 조직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답니다.」
애플의 자유로운 분위기는, 세키네에게 숨을 불어넣고 있었다.
「중졸이었던 아버지가, 학력 때문에 이직에 실패하는 것을 봐버렸기 때문일 거예요. 아무리 좋은 인재라고 한들, 믿음을 주지 못하면 기회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죠. 직원들의 배경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인재를 고용하고 있던 애플은, 그런 답답한 환경을 살아온 저에게 이상적인 회사로 비쳐진 겁니다.」「원래 저희 집은 가난했기 때문에, 부모님이 무언가를 사주신 기억이 잘 없어요. 돈이 필요할 때면 외할아버지가 도와주시고는 했어요.」
세키네의 외할아버지는 일본의 대형 해운회사에서 외항 화물선의 선장으로써 일을 한 뒤, 그룹사 사장이 된 거목이었다.
시련이 찾아온 것은 세키네가 고등학생 때의 일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치매에 걸렸고, 아버지는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고, 어머니는 병에 들고 만 것이다. 곤란한 상황을 공유하고 상담받을 형제도 없었고, 친척도 없었고, 친구도 없었다. 세키네는 미래를 잃은 듯만 했다.
세키네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와세다 대학 등 도쿄의 명문 사립 학교에 진학는 학생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역의 명문 고등학교였다. 그런 곳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그 상황에서는 수험 공부가 아니라 고졸로 소방관이나 경찰관이 되는 것이 좋지 않을지 갈등하는 나날이 계속 되었다.
「니혼대학에 합격하고도, 입학금 지불 마감일까지 20만엔 가량의 입학금을 낼지 말지 결정을 못했어요. 니혼대학에 가고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었죠. 하지만 재수를 할 만한 체력도, 정신력도, 돈도 없었습니다. 일단 입학해 보고, 그때 다시 생각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어머니의 한마디에 등이 떠밀려 입학을 결정했어요.」
대학 학비는 부모가 들어두었던 학자금 보험에 자신이 번 돈을 보태어 냈다.
「가난에 의해 선택할 자유를 빼앗기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큰 돈을 벌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무리를 해서라도 그 늪에서 빠져나오지 않으면 점점 부정적인 방향으로 끌려갈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어요.」
「최근에, 제가 엄청난 사람이 되고 싶다기보다는, 원하는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날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은 니혼대생이여서 다행이었다라는 생각을 하지만, 당시는 니혼대생인 것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만 들었어요. 결국 애플이라는 거인의 갑옷을 입은 것도, 학력 때문에 제 미래의 선택지가 좁아지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와 이어지고 싶었다
처음 애플 스토어를 찾은 날, 그 자리에서 일하고 싶다는 의사를 바로 매니저에게 전할 정도로, 세키네는 애플의 직장 환경에 흠뻑 빠져 있었다.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잡기 위해, 면접 준비에 많은 시간을 쏟은 세키네. 채용 면접에서 자신의 포부를 털어놓았다.
「저에게 애플 스토어는 발판입니다. 애플 같은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 저는 애플 스토어의 에이스가 돼서 졸업을 하고 싶어요. 저는 대학생이기 때문에 남들과 같은 영업 기술도, 사회 경험도 없습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급성장하는 제 모습을 보고 직원분들이 자극을 받아 전체적인 생산성이 높아질 것이라 생각해요. 그러니 저를 채용하실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그런 포부가 전해졌는지, 대학교 1학년의 여름, 세키네는 계약 사원으로서 채용되었다. 대학교에는 최소한의 수업만 출석하면서 주 4일정도의 페이스로 일하게 되었다.
입사 1년차만 해도 세키네는 자신의 포부가 정확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눈에 띄게 두각을 나타내었고, 2년차 중반 무렵에는 매출/충성 고객 관리 분야에 있어 영업 부문 최우수 10% 레벨에 매번 이름을 올리는 에이스 사원이 되었다.
「제가 애플의 얼굴이다라는 마음가짐 아래, 어떤 손님이 와도 좋은 경험을 시켜주자는 마음을 담아 접객했어요. 예를 들면 아이폰에 관심이 있어 방문한 손님이라도, 이야기를 들어 보고 아이패드나 맥북을 구입하는 것이 적절한 경우에는 그쪽을 추천하고는 했어요.」
「손님분들을 전부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손님들조차 눈치채지 못한 각각의 니즈와 마주하려고 했던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사 하나만 두고 생각해도, 손님이 원하는 방향에 맞춰 인사 각도, 자체, 몸의 방향, 어조까지 바꾸고 있었어요.」
하지만 세키네는 그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았다. 조금 더 자신이 공헌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생각한 것이다. 열정을 불태우면서 발견한 것이, 애플 제품의 고객 지원을 담당하는 ‘지니어스 바’ 였다.
「애플 스토어에 오는 손님은, 애플의 팬이나 애플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즉, 애플에 대한 충성도를 3점에서 5점이나 10점으로 하는 것이 저의 일이었어요. 반면 지니어스 바는 애플 제품에 불신이나 불만을 품는 사람이 오기 때문에, -3점을 5점이나 10점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실제로, ‘이거 어떻게 하실건데요?’ 라고 큰 소리를 치는 손님도 있었어요. 하지만, 처음에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던 사람들을 웃는 얼굴로 돌아가게 하니 정말 기뻤어요. 자신을 통해 애플과 손님과의 관계가 개선되었다고 생각되는 순간이 가장 큰 보람을 느꼈지요. 상품을 팔고, 실적을 남기자는 생각보다는, 손님과 좋은 관계를 맺고 손님이 만족할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다는 열정이 늘 앞서 있었어요. 그렇기에 좋은 결과를 남길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최선을 다해 일을 할 작정이었다
자신을 찾아 떠난 여행을 통해, 자신의 근본을 떠올린 세키네. 그는 TYPICA에 입사한 이래, 한국·대만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의 신규 사업을 개척해왔다. 2022년 1월에는, 고토 대표로부터의 제안을 수락하여 대만 사업부의 책임자로 취임하였다.
「생각한 이상으로, 제 행동 하나하나가 회사의 성장과 직결되는 것에 대해 역동성과 생동감을 느끼고 있었어요. 잘 닦인 환경에서 전력 질주만 해 왔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TYPICA는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었지요. TYPICA에서는 동료를 모집해, 그 사람들과 함께 달려갈 길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과 대만의 로스터 리스트를 작성할 때는 저를 포함한 일본인이 작업하는 것보다 한국어나 중국어를 마스터한 대학생에게 일을 분담하는 것이 생산성을 높일 수 있지요. 알바생이나 인턴생 등, 다양한 힘을 빌리면서 목표 달성을 향해 가는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그 속에서, 사람이 회사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충실한 시간을 보낸 그들로부터 자진해서 일을 더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거나 하면 굉장히 기쁘고는 한답니다.」
「솔직히, 여태까지의 회사와 비교해서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이 많아 당황스러운 부분도 있었어요. 하지만 TYPICA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축으로 생각을 해도, TYPICA에서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 회사를 키워나갈 역량을 기른다는 축으로 생각을 해도, 그게 제 꿈과 직결돼 있는 것 같아 신선하고 즐거워요.」
모나코에서 살고, 요트를 소유하는 것이 세키네의 꿈이다. 2017년에 다녀온 유럽 여행에서 본 점잖은 모나코 남성들의 모습이 세키네의 가슴을 뛰게 한 것이다.
「모나코의 신사 두 명이 자신의 소박한 나무 요트 갑판에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무언가를 달성해낸 듯한 특유의 온화함, 자신감, 정신적 여유가 엄청나게 느껴졌습니다. 동경을 느꼈고, 그 때의 흥분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을 정도에요.」
사이버 에이전트에서 근무하던 시절, 세키네는 그러한 꿈에 조금이라도 다가가기 위해 아무리 일이 바빠도 주말은 아침 5시에 일어났다. 그리고 일상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떠나 요트를 타고 바닷가를 질주하였다.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할아버지의 영혼을 바닷가에서 느끼고, 대자연의 기운을 느끼면서 마음을 추스렀던 것이다.
「제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대표님이 진심으로 응원해 주시고 계세요. 이것이 제가 TYPICA에서 계속 일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회사한테 이용당하는 직원이 아니라, 제가 회사를 이용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것이 오히려 회사에 도움이 되요. TYPICA는 사업의 성장성이 확실한 데다가, 누군가의 삶에 공헌하는 것을 느낄 때 동기를 부여받고 실력을 쌓을 수 있는 제 특성을 잘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무리 장대하고 확고한 꿈을 꾸고 있다 하더라도, 현실에 들이닥쳐 그 꿈의 모습을 잃어버리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세키네가 이를 느낀 것은 회사가 갈등을 겪던 2021년 연말의 일이었다.
고토 대표가 문제의 원인을 물었을 때, 세키네는 ‘책임자의 계획을 따르고 있었을 뿐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고토 대표는, 이렇게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문제가 생긴다면 그것은 전부 자기 책임이야. 좋은 일을 해냈다면 그 기쁨은 모두가 함께 나누자. 나는 그런 생각으로 세키네씨에게 일을 맡기고 있어’.
「혼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무의식중에 저를 방어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때 사명감이 약했던 것을 자각했어요. 최선을 다해 일을 할 작정이었는데 말입니다. 따지고 보면 TYPICA 사업을 통해 성취할 미래를 믿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세키네는 팀을 총괄하는 책임자이다. 지금까지 플레이어로서 결과를 남겨 온 세키네에게 있어, 새로운 단계이기도 하다.
「일을 시작한지는 아직 1~2주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제 행동이 모두 TYPICA의 대만 사업으로 이어진다는 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어요. 제가 하는 일의 목적은 주어진 숫자나 KPI(핵심 성과 지표)를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스페셜티 커피의 유통량을 최대화해 커피 업계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런 방향성으로 시야를 넓혀 성과를 남기는 방법을 찾아내고 싶어요.」
환경이 사람을 좌우한다는 속담은 유명하다. 그야말로 새롭게 책임자가 된 세키네는, 시련을 극복하고 업그레이드 할 기회를 잡은 것이다.
「지금까지의 다른 회사에서 해온 일들은 100에서 1000을 만드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TYPICA의 일은 1에서 10, 100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2021년 10월에 막 대만에 상륙한 TYPICA는, 아직 애플과 같은 압도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 제 목표는, 새로운 생두를 오퍼할 때마다 대만 사람들이 흥분하는 수준까지 TYPICA를 끌어올리는 것이에요. 그런 미래가 실현되면, 생산자뿐 아니라 대만 로스터,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의 삶이 여러 의미에서 풍요로워집니다. 팀원들과 함께 목표를 향해 달려나가는 경험은, 언젠가 경영자가 될 때를 대비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