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yra Qata Juan Boyan Guarachi

Juan Boyan Guarachi후안 보얀 구아라치

Nayra Qata나이라 카타

1등이 될 마음가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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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의 카오스 속에서 우리와 같은 외국인이 커피 생산자와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 정치, 문화, 인간관계, 그리고 험난한 자연환경이 얽혀, 우리도 자꾸만 카오스로 끌려들어간다. 볼리비아의 생산자라고 하면 아그리 카페가 유명하지만, 그 이외의 생산자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후안씨는 그런 어둠을 밝히는 핵심적인 사람이다. 그는 오랫동안 일했던 아그리 카페를 퇴직하고 2019년 라파스에 드라이 밀을 세웠다. 소규모 생산자의 커피를 정제하는 일을 시작한 것이다.

후안씨의 꿈은, 아직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볼리비아의 소규모 생산자에게 빛을 비추어 세상에 알리는 것. 그렇기에 많은 소규모 생산자들이 커피를 들고 후안씨의 드라이밀을 찾는다. 그는 품질을 올바르게 판단하고, 적절히 정제하고, 롯을 관리하며, 우수한 커피를 전 세계 커피마켓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후안씨는 로스터의 관점에서 보면, 아직 아무도 모르는 볼리비아의 소규모 생산자와 연결해 주는 유일한 끈이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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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yra Qata(나이라 카타)는 남미에서 쓰이는 잉카 언어로, 1등이 될 마음가짐 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후안씨와 함께 카라나비 지구를 여행했다. 그 중에서도, 카라나비의 호텔에서 커핑을 한 밤을 잊지 못한다. 모두가 녹초가 된 가운데, 후안씨는 말없이 커핑 준비를 해 주었고, 커핑은 밤 11시까지 이어졌다.

몸집이 크고 느긋한 분위기를 가진 후안씨지만, 일 얘기를 할 때면 가끔 눈빛이 날카로워진다. 우리는 드라이 밀을 걸으며 후안씨의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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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페드로와의 만남

「집이 가난했기 때문에 젊은 나이에 일하러 나갈 필요가 있었습니다. 16살에 공장에서 커피 콩을 나르는 일을 시작했지요. 그냥 짐 나르는 일이긴 했지만,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일했어요. 옛날부터 완벽하게 일하는 것을 좋아했거든요. 그것을 사장님이 좋게 봐주셔서, 마침내 공장장까지 승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로스팅과 기계 유지보수 등의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일을 시작한 지 몇 년 후, 한 생산자가 커피를 정제하러 저희 공장에 왔었어요. 그는 제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서커스 문지기가 되고 싶니? 아니면 사자 조련원이 되고 싶니?’라고. 그리고 ‘너는 더 많은 책임이 따르는 일이 잘 맞을거다. 나와 같이 일하자’ 라고 제안해주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현재 아그리 카페의 대표인 돈 페드로였습니다. 저는 공장을 그만두고 페드로와 함께 일하기로 결정했어요. 1999년, 즉 19살 때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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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처음에 페드로와 일했던 직장은 결코 좋은 환경이라고는 할 수 없었어요. 오래된 공장이라, 1층에는 창고, 2층에 정제소가 있어서, 커피 생두를 들고 오르락 내리락 했었습니다.」

「2년째 되던 해, 공장 근처의 강이 범람해 1층 창고가 물에 잠겨 회사가 위기에 빠졌습니다. 페드로는 저만 빼고 다른 직원을 해고해야만 했어요. 페드로는 ‘다음 한 해가 마지막이 될 거야. 회사를 살리지 못하면 나는 다른 일을 찾아야 할 것 같다. 너도 다른 일을 찾을 수 밖에 없어.’라고 했어요.」

「페드로와 저는 새로운 공장을 발견하고 일을 시작했어요. 저는 페드로에게 ‘더 많은 일을 하게 해달라’고 부탁하면서 오전에는 재고관리, 오후에는 오피스 업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한 결과, 회사의 실적은 서서히 회복되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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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페드로는 서로 잘 알고 있었어요. 그만큼 그의 생각과 행동을 가장 잘 이해한 건 저였지요. 페드로는 아주 세심한 성격이었는데, 예를 들어 그가 ‘여기를 깨끗하게 해 줘’라고 부탁하면 납득할 수 있게 완벽하게 처리하곤 했어요.」

「페드로의 인간성을 나타내는 에피소드는 하나 더 있어요. 어느 날 페드로가 ‘나 이거 안쓰니까 너한테 줄게’ 라며 면도 크림을 주었습니다. 제 외모가 좀 덥수룩했던 시절이라, 면도를 하라고 돌려서 말해 준 겁니다. 그는 정말 사려깊은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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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에 대해서

「독립에 대해서는 창업하기 7년 전쯤부터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그리 카페에서 스페셜티 커피를 많이 취급하기 시작했는데, 그 무렵 저는 마이크로롯을 1,000가지 이상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그 경험을 살려, 아직 알려지지 않은 소규모 생산자의 원두를 정제해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또한 페드로의 아들이나 딸이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회사의 분위기가 새롭게 변해간 것도 이유중 하나에요.」

「정제 기계를 교체하려는데, 지금 사용하고 있는 기계를 누군가에게 팔아주지 않겠냐고 해서, 독립을 염두에 두었던 저는 제가 직접 구입하기로 했습니다.」

「아그리 카페를 그만둘 때, 페드로는 사표를 받지 않았어요. 절대로 그만두지 말라고 만류했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22년이나 일하던 회사를 그만두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었지요. 그만두지 말까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이미 기계를 구입했기 때문에 되돌릴 수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모든 일을 인수인계하고, 2019년 4월 1일부터 자신의 새로운 공장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1년 반은 정말 힘들었어요. 아그리카페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을 정도였으니깐요. 혼자서 시작했기 때문에, 높은 곳에서 기계를 수리하다 나사가 떨어져도 아무도 주워 주지 않는, 그런 사소한 것에 고독감을 느끼고는 했어요. 혼자 텅 빈 창고에 무릎을 꿇고 신에게 기도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지금 인터뷰하는 곳의) 콘크리트를 깔기 위해서도 차를 구입하려고 모아뒀던 돈을 써버렸답니다. 아내와 서로 격려하면서 어떻게든 계속해 올 수 있었는데, 그만큼 아내에게 정말 감사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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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에 대해서

「많은 생산자들이 제 소문을 듣고 이 정제소에 커피를 가지고 와요. 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가난한 생산자가 찾아오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원래 살 수 없는 것이라도 돈을 탈탈 털어 사버리곤 합니다. 여기에 커피를 가져다 주는 생산자를 위해 최고의 정제를 해서 로스터님들에게 훌륭한 커피를 제공하고 싶습니다.」

「볼리비아의 생산자들이, 여기에 커피를 가져 오면, 훌륭하게 정제를 해 주고, 전세계에 판매하게 해주는, 그런 존재로서 성장해 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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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yra Qa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