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identity)을 되찾자
만약 당신이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모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그리움이나 낭만과 같은 마음의 울림을 느낄 것이다. 모카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커피가 수출된 예멘 항구의 이름이기도 하며, 에티오피아와 예멘 커피의 총칭으로써 널리 사용되어져 왔다. 베일에 싸인 다른 커피들과는 달랐다. 이런 모카의 모습은 압둘라만의 이상과 공통점이 있을지도 모른다.
압둘라만 사이드는 예멘에서 태어나, 여러 나라를 떠돌며 살았던 남자였다. 그는 커피를 통해 예멘이라는 나라의 정체성(identity)을 되찾으려 노력했다고 한다. 우리가 그와 연락이 닿았을 때, 그는 자신의 꿈을 위해 막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Mocha가 아니라, “Mokha”
압둘라만은 이전까지 친구, 사촌과 함께 예멘의 커피 생두를 취급하는 사업을 경영해왔는데, 자신의 꿈을 위해 홀로 회사에서 나와 예멘의 커피 생산자와 로스터를 잇는 온라인 플랫폼 ‘Mokha not Mocha!’를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2022년 6월 런칭 예정인 이 플랫폼에서는, 생두 생산자의 프로필이나 생산량, 가격 등의 세세한 정보들이 공개된다고 한다. 놀랍게도, 이건 TYPICA의 사업 가치관과도 딱 들어 맞았고, 그 역시도 우리 사업에 흥미를 가졌다고 한다. 압두라만은 아래와 같이 말했다.
“현재 파트너쉽을 맺고 있는 생산자는 아직 약 열 분 정도이기에, 당분간은 그분들과 유대감을 쌓고, 관계를 돈독히 하는데 힘을 쏟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아무하고 파트너쉽을 맺고 싶은 건 아닙니다. 저의 사업 내용이나 비전, 목적에 대해 이해해주고, 깊게 공감해줄 수 있는 그런 생산자를 찾고 있습니다. ‘양보다 질’ 이것이 바로 저의 철학입니다.”
‘Mokha not Mocha!’, 이목을 끄는 그의 회사 이름에는 예멘이라는 나라의 정체성(identity)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겨있다. 모카(Mocha)는 특히 유럽과 미국에서는 초콜릿 시럽, 에스프레소 샷, 우유를 사용한 음료인 카페 모카를 가리키는 말로써 사용되는 경우가 많고, 커피 무역의 기원인 예멘의 모카항(Mokha)이라는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압둘라만은 말했다. “모카는 전 세계 역사상 최초로 커피가 해외로 수출된, 예멘 항구의 이름입니다. 구글맵에 모카를 검색해보면, Mokha와 Mocha, 두 단어로 함께 표기되어 있습니다. 만약, 그 중 항구의 이름으로서 Mocha가 널리 알려져 있다면, 예멘산이 아닌 커피에 초콜릿 시럽을 넣은 음료를 Mocha라고 부르고 싶지 않습니다. ”
예로부터 ‘행복의 아라비아’ 라고 불리며, 무역으로 번영했던 예멘이지만, 장기간 지속되는 내전의 영향으로, 현재 약 절반 정도의 국민들이 빈곤과 기아에 시달리는 인도적 위기에 처한 국가로 전락하고 말았다. 국제사회는 예멘 내전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고, 해결의 실마리도 보이지 않는 실정이다. 산업도, 문화도, 외교도 내전으로 인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여, 예멘이라는 나라의 정체성(identity)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압둘라만은 커피를 무기로 이러한 위기에 맞서려고 하는 것이다. “‘Mocha’가 아니라, ‘Mokha’다” 라고 소리치며.
어린 시절의 경험
압둘라만은 보통의 예멘 사람들과는 사뭇 다른 어린시절을 보냈다. 예멘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아랍 에미리트의 국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저의 가족은 비스킷이나 팜유, 유제품과 같은 다양한 식품 제조업을 경영하고 있었습니다. 다국적기업으로서, 세계 각국에 공장이 있었습니다. 저의 할아버지께서 사업을 많이 키우셨는데, 저는 어디를 가더라도 할아버지의 이런 노력의 정수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세계 각국의 공장에 따라 갈때마다, 아버지께서는 이게 모두 다 할아버지께서 세우신 것이라며 알려주셨습니다. 할아버지가 이렇게 세상에 공헌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저는 뿌듯함과 동시에 겸허한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습니다.”
압둘라만의 조부에게는 20명에 가까운 손자가 있었는데, 압둘라만은 그 중 장손이었고, 조부로부터 이름을 이어받았다고 한다.
“저희 예멘의 문화에서 할아버지로부터 이름을 이어받는 것은 가문과의 특별한 유대감을 상징합니다. 높은 덕망과 지식을 갖춰야 하는, 가문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감을 어렸을 때부터 줄곧 느껴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장손으로서 특별 대우를 받으며, 유복한 가정에서 살아온 압둘라만은 자신이 지금껏 살아온 환경과 예멘의 현실의 차이에서 일종의 괴리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런 특별했던 어린 시절의 경험이, 그의 꿈의 원천이 되었다.
정체성(identity)을 되찾자
압둘라만은 16살에 미국 기숙학교에 입학했고, 그 후 정치학을 전공하기 위해 보스턴 대학에 진학했다. 정치학을 선택한 이유는, 정치학이 예멘 문제 해결을 위해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저는 대학시절, 제가 배운 모든 이론이나 지식들을 어떻게 하면 예멘에 적용시킬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며 공부했습니다. 그렇기에, 교수님이 계획한 커리큘럼에 따라 공부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커리큘럼을 만들어 공부했습니다.”
또한, 그는 가업인 식품업계의 기저에 있는 농업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어른이 되고나서, 대량생산된 값싼 상품들은 그 유통과정이 불투명하고, 불공정한 거래가 빈번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사업자는 투명한 유통과정을 지키고, 소비자는 이러한 유통과정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켜보며 공정하게 소비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의 어투에서는 일관된 강한 사명감이 느껴졌다. 대학생이었던 시절 그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먼저 조국을 위해, 그 다음으로는 가족이 몸 담고 있는 업계를 위해 산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위대한 가문의 장손으로서 짊어진 무거운 책임감이 그를 이렇게 어른스럽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미국이라는 제3국에서 객관적인 제3자의 시선으로 예멘을 바라봤을 때, 자신의 정체성(identity)의 혼란이 왔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가 예멘 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발견한 분야는 바로 “커피”였다.
“예멘의 시장동향이나 커피 업계의 성장을 보고 느꼈습니다. 예멘의 커피를 팔자, 전 세계로 수출하자라고 말이죠. 그리고 2016년에 대학을 중퇴하고, 아랍 에미리트에서 병역의 의무를 다하던 2017~2018년 사이에 커피 비즈니스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친구나 사촌동생과 함께 시작했지만, 예멘의 정체성(identity)을 되찾자는 조금 엉뚱한 꿈을 진심으로 믿고 이루려는 사람은 저 혼자라는 것을 알게 된 후, 홀로서기로 결심했습니다.”
커피는, 위와 같은 그의 문제의식과 직결되는 안성맞춤인 사업 주제였다. 그러나, 이미 기존의 방식대로 견고하게 운영되고 있는 유통과정을 그 혼자서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아예 자체 플랫폼을 만들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플랫폼을 만들자고 결심한 이후로부터, 저의 기존의 고정관념들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지금은 1kg에 50달러로 판매되고 있는 커피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급 호텔에서는 1kg에 300달러까지 가격이 치솟는다는 건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이겠지요. 중요한 것은, 과거의 경험에 얽매이지 않고, 열려 있는 마인드로 자유롭게 사고하는 것입니다. 가격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는 지금, 그 가치 역시 스스로 만들어 가기 나름입니다.
플랫폼 ‘Mokha not Mocha!’를 통해, 예멘의 커피 생산자가 자유롭게 가격을 정하고, 해외의 로스터에게 직접 커피를 판매할 수 있게 된다면, 그건 예멘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멘의 커피는 지금 역시도 희소성이 뛰어나고, 이국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이런 가치를 투명한 유통과정과 함께 널리 퍼뜨릴 수만 있다면, 예멘은 훌륭한 커피를 생산하는 나라로서 정체성(identity)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예로부터 예멘의 커피가 ‘아라비안 모카’로서 귀하게 여겨졌던 것처럼.
미래를 향해
압둘라만은 미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예멘의 커피 시장을 개척하며 ‘Mokha not Mocha!’의 직원들이 점차 늘어난다면, 그 후에는 로스팅에 직접 도전해보고, 로스팅한 커피콩의 자사 브랜드를 만들고 싶습니다. 팔고 남은 생두들을 회사에서 로스팅 할 수 있다는 선택지가 있다면, 사업의 폭이 넓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Mokha not Mocha!’의 플랫폼에서는 향후 커피가 아닌 다른 농작물도 취급할 계획이라고 한다.
“커피 시장에서 일단 자리를 잡는다면, 그 무대를 발판삼아 어느 분야에도 진출할 수 있습니다. 예멘의 면화도, 유통과정을 알 수 있는, 공정하고 투명한 형태로 취급할 수 있게 되겠지요. 어느 쪽이든, 모든 사업에 있어서, 원료부터 상품까지의 모든 과정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것이 저희의 일관된 철학입니다. 저희는 지금, 커피를 통해 ‘Mokha not Mocha’의 이러한 철학이 시장에서 잘 적응하는지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대기업을 경영하는 인생도 있었겠지만, 그는 보다 세상을 넓게 보며, 꿈을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었다. 압둘라문에게 있어 커피사업의 성공은 아득히 먼 예멘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한 한 걸음인 것이다.
압둘라만은 ‘Mokha not Mocha’의 런칭에 앞서, TYPICA에 예멘의 커피를 유통하고 있다. 그의 강한 신념이 기점으로 전 세계 로스터들의 힘을 모은다면, 예멘의 미래는 반드시 긍정적으로 변화할 것이다. 커피라는 음료가 한 나라의 미래를 바꾸고 있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우리들은 함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