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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여정은 계속된다

메리와의 만남은 우연이었다. 다르에스살람에 사는 나의 지인이, 근처에 스페셜티 커피를 취급하는 카페의 바리스타와 친해지며, 이런 사람이 있다고 메리를 소개해 준 것이다. 커피 컨설턴트로서 탄자니아 남서부의 마을 무베야에서 활동하는 메리는, 많은 해외 바이어들의 신뢰를 받는 존재이다.

메리는 무베야에서 거의 유일하게 현지 탄자니아인이 경영하는 GDM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었다. 그녀가 없었더라면 탄자니아 남부의 커피를 오퍼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 그녀의 직업이나 성장 배경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생산자와 바이어의 중개역

메리는 스타벅스의 농부 서포트 센터, 스카피나 등 대기업에서 경력을 쌓은 뒤, 현재 커피 기업에 소속하면서 무베야의 수많은 커피 생산자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2019년 영국의 기업인 CTCS가 탄자니아에 설립한 현지법인 키쟈니 커피에 입사해, 커피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생산자 분들이 적절한 방법으로 커피 농사를 진행하고 있는 지의 여부를 감사하는 일이 그 중 하나에요. 또 다르에스살람과 남아프리카공화국, 영국 등 CTCS의 각 거점에 보내는 커피의 품질 체크와, 생산자와의 거래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메리는 기업에서 일하면서 어느새 생산자와 바이어의 가교 역할로 업계에 이름을 날렸다.

「해외 바이어들은 탄자니아 로스터들에게 저의 소문을 듣고 커피 샘플을 받으러 와요. 다른 회사로 옮기면 저는 또 새로운 파트너를 만납니다. 이렇게 계속 파트너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제 능력이 아니라 신의 가호라고 생각해요.」

메리는 커피뿐만 아니라 다른 농작물과 관련된 프로젝트에도 종사하고 있다.

「예를 들면, 커피 생산자들에게 아보카도와 마카다미아넛의 묘목을 무료로 제공하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아프리카의 농업에는 항상 가뭄 문제가 따라다니기 때문에 생산자가 커피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른 농작물에서도 수입을 얻을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덧붙여 저는 커피 업계에 들어가기 전, 23살까지 아보카도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거기서 얻은 지식을 활용하게 되었네요.」

메리의 커리어는 탄자니아와 커피에 대한 사랑으로 일관되어 있다. 그 사랑은 자연스럽게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활동으로 연결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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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강한 여성

탄자니아 북부 킬리만자로에서 태어나 자란 메리는 어려서부터 커피와 인연이 있는 삶을 살았다. 어머니는 사업가로서 작은 회사를 경영하면서, 아라비카 종자 나무 2000그루가 있는 농원을 소유해 도시의 식당 등에 커피를 판매하고 있었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커피를 사러 오는 많은 외국인 관광객을 봤기에, 커피에 대한 지식은 조그맣게나마 가지고 있었어요.」

메리의 어머니는, 옛날에 ‘4,000달러에 농원을 팔지 않겠느냐’라고 제의를 받았을 때, 「나는 아이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이 커피 농장 이외에 의지할 것 이 없어요. 이 아이들의 장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내 땅을 당신들에게 팔 수 없습니다. 대신에 커피 콩을 사서 가길 바래요.」라며 거절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속했던 차가족의 전통은, 부모가 소유한 토지를 분할해 자식들에게 상속하는 전통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커피 농원도 그렇게 상속받은 것 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산을 팔면 안 된다는 말을 자주 하셨기에, 땅을 안 팔겠다는 판단은 어머니에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죠. 그 일이 있었던 뒤로, 어머니는 저희의 생활과 교육에 일절 불편함이 없도록 더욱 분투해 주셨습니다.」

메리는 자신의 어머니가 여태 껏 만난 여자 중 가장 강한 여자라고 말한다.

「집을 떠난 아버지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지 못한 어머니는, 혼자서 아이 여섯을 키워냈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딱히 굶주렸 던 기억은 없고, 대학에도 다닐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항상 만들어 주셨던 큰 접시에 만든 아프리카 요리는 따뜻한 추억이었어요. 아프리카의 아이들은 ‘적자 생존’ 이라고도 할 수 있는 환경아래에서 자라고 있어요. 어머니는 차가족의 전통에 따라 교육을 가장 중요시했기 때문에, 이 집에 있고 싶으면 공부해라, 라고 하는 무언의 압박이 있었습니다(웃음). 그렇기에 공부하는 것 이외의 선택지는 없었어요. 어머니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희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시키고 싶었던 거죠.」

현재 두 살배기 딸을 키우는 어머니이기도 한 메리에게도, 어머니의 정신력은 이어져 오고 있다.

「식사, 교육 등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해 주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다른 사람에게 제 딸을 키우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 양손과 뇌는 일을 하라고 있는 게 틀림 없습니다.」

탄자니아만큼 여성이 일하는 나라는 없다고 한다. 예를 들어, 마사이족은 일부다처제(一夫多處制)로 아내와 소의 수가 풍요의 지표가 된다. 남성은 아이가 태어나면 가족의 곁을 떠나 다음 아내를 찾으러 다닌다. 여성은 여자 혼자 아이를 키우며 농사와 노점상으로 생활비를 벌고, 남성은 나무 그늘에 모여 하루 종일 보드게임을 하며 담소를 나눈다. 그것이 탄자니아의 문화이다.

메리의 어머니도, 메리도 커피와 함께 강인하게 살고 있다. 그러한 정신력이 메리의 딸에게도 이어질 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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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자니아 커피의 매력

탄자니아라는 커피 생산국은, 킬리만자로라는 브랜드가 있지만 스페셜티 커피에 대해서는 이웃 케냐나 에티오피아에 비해 인상적이지 못한 느낌을 받는다. 탄자니아 커피의 특징은?이라는 질문에, 쉽사리 대답을 못하는 바리스타가 많을 것이다.

메리는 탄자니아가 브랜딩에서 밀리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우리는 탄자니아에서 훌륭한 스페셜티 커피를 만들어 경쟁력을 키우려 합니다. 외국인들이 와서 에티오피아 커피가 역시 최고야라고 말하는 걸 듣고 싶지 않아요. 우리가 만들고 싶은 것은 탄자니아에서 자란 탄자니아만의 커피입니다.

탄자니아 커피의 매력은 그 다양성에 있습니다. 커피의 풍미에서 각각의 지역 특성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또, 탄자니아의 생산자들은, 고객의 요구를 배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마음을 열고 있지요. 찾고 있는 풍미의 프로필이나 원하는 커피의 타입을 알려주면, 거의 원하는 커피를 전달해 줄 수 있어요.」

커피 발상지로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하는 에티오피아와, 커피가 비즈니스로서 깊숙하고 튼튼하게 구조화되어 있는 케냐. 그런 라이벌과 비교했을때의 탄자니아의 특성은, 메리가 말하는 생산자의 사고 방식의 유연함에 있는지도 모른다.그것은, 탄자니아에 흐르는 느긋하고 상냥한 분위기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었다.

탄자니아의 미래

스페셜티 커피의 수요가 전 세계적으로 높아지면서 탄자니아의 많은 커피 생산자들이 스페셜티 커피에 눈을 떴다고 한다. 소비국에서 들어오는 수입업자들의 투자가 늘어나면서 생산 방법을 배울 기회가 생산자들에게 주어졌다.

「우리가 취급하는 커피의 절반은 일본, 미국, 독일에 수출됩니다. 그 나라들에서 받는 투자와 자금 원조가 생산자들의 눈을 뜨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줄지도 모르는 시장에 의존했던 것에 비해, 이제는 점차 미래가 보이고 있습니다.

도시화로 인한 커피 농장의 감소와, 토지 가격의 급등이 큰 문제가 된 케냐 대신, 탄자니아의 농장을 사는 투자자도 늘고 있다고 한다. 이는 큰 발전의 기회라 할 수 있다.

커피의 여행은 계속된다

「제가 큰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커피의 정제와 수확을 직접 확인하고 있을 때에요. 저희는 워싱 스테이션에 밤새 머물며, 품질을 점검하고 품질 향상을 위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어요. 이번 시즌에는 총 50개 이상의 정제소에서 3개월 정도 머무르며 모니터링을 하는 등, 커피 생산현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요. 힘들때도 있지만, 너무 멋지고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왜냐하면 커피가 어떻게 정제되고 맛있는 커피가 되는지를 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죠. 진정한 밸류 체인이 무엇인지도 찾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사무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네요.」

그렇게 말하는 메리는 지난해부터 개인 커피 농장을 시작했다. 「지금은 아직 6,000평 정도에 불과한 농장입니다만, 언젠가는 컨테이너 한 대 분량의 커피를 수출할 생각이에요.」라고 메리는 말한다. 마침내 생산자로서의 길도 걷기 시작한 그녀. 그녀의 커피 여정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계속 변화하는 탄자니아의 커피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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