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소평가는 간과하지 않는다. 진정한 한 잔을 추구하며
스페셜티 커피 업계에서 콜롬비아는 주목받는 생산국 중 하나다. 특히 자주 회자되는 인퓨즈드(Infused)와 공발효(Co-fermentation) 외에도 스파이시 부르봉(Spicy Bourbon)과 부르봉 시드라(Bourbon Sidra) 등 매년 새로운 종류도 등장하여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찬반이 어떻든 기존의 커피 생산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그런 콜롬비아에서 젊은 생산자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 핀카 엘 디비소(Finca El Diviso)의 네스터 라소(Nestor Lasso)다. 정제에 180시간 들인 핑크 부르봉 내추럴(Pink Bourbon Natural)은 2021년 국내 대회를 제패했다. 심지어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WBC)에서도 3년 연속 톱 3에 진입해 그 이름을 전 세계에 떨치고 있다.
그런 네스터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의 커피를 다양한 대회에 출품하는 것뿐만 아니라 수많은 국제 커피 이벤트에 함께 참석하는 등 지원을 이어온 것이 2019년에 카타 익스포트(CATA Export)를 공동으로 창업한 카탈리나 구티에레스와 피에르 파르제통이다.
두 사람은 네스터뿐만 아니라 지난 3년간 국내 바리스타 챔피언십과 브루어스 컵에서 우승을 거듭하고 있는 로스 노갈레스(Los Nogales)의 오스카 에르난데스(Oscar Hernández), 2024년에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 준우승자에게 커피를 제공한 조너선 가스카(Jonathan Gasca) 등 큰 가능성을 지닌 생산자들을 지원하고 있다. 2024년부터는 우일라(Huila)에 농장을 만들어 직접 커피 생산도 시작했다.
엄선된 콜롬비아산 커피를 세계에 전하려고 하는 두 사람의 원류에는 ‘커피 생산자에게는 자신의 커피와 노력의 가치를 주장할 여지가 없다’라는 현 상황에 대한 위화감이 있다. 열정에 이끌려 창업하여 비즈니스를 통해서 ‘진정한 투명성이란 무엇인가’를 계속 물어 온 두 사람은 가슴속 깊은 곳에 어떤 생각을 품고 있을까.
생산자의 일에서 가치를 찾아내다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과 ‘투명성’이라는 말이 널리 사용되게 된 지 오래되었지만, 듣기 좋은 말, 그럴듯한 말은 겉치레하는 수단으로 남용되기 마련이다.
카타(CATA)가 공급하는 블렌드 커피에는 그 풍조에 대한 안티테제도 담겨 있다. 보통 생산자 2~4명의 커피를 각각의 비율을 알 수 있도록, 그리고 그 근거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상태로 블렌딩하고 있는 것이다.
카탈리나는 말한다. “블렌드든 싱글 오리진이든 본질은 생산자의 일에서 가치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로트에 따라서는 다른 로트와 블렌딩함으로써 더욱 그 매력을 끌어낼 수 있는 것도 있으니까요.”
피에르는 말한다. “저희가 창업한 2019년, 업계에는 트레이서빌리티(Traceability)가 결여되어 있었습니다. 커피 공급망은 길고 여러 업체가 중간에 존재하기 때문에 많은 정보가 그 과정에서 손실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커피콩 패키지에 기재된 설명문은 고사하고, 생산자의 이름, 사진조차 틀리는 일이 일상화되어 있었습니다. 요점은 생산자의 일이 과소평가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독립 뮤지션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음악 업계는 경쟁이 치열하고, 많은 프로모터가 아티스트에게 부당하게 낮은 보수를 지급하는 착취적인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작곡한 데모 테이프를 프로모터에게 보내도 답을 받지 못하는 것은 커피 생산자가 생두 샘플을 수출업자에게 보내도 아무런 평가도, 피드백도 받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시당한 경험이 저에게 있기 때문에 생산자와 깊게 소통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저에게 ‘진정한 관계성’이란 업계를 더 좋게 만들기 위해 같은 뜻을 가진 양자/두 회사가 함께 임하는 열의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그리고 서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를 비즈니스에 반영하는 것이 저희가 하는 일의 핵심입니다.”
함께 커피의 세계를 탐구하다
카타(CATA)는 창업 초기에 협력하여 일할 생산자를 선택하는 기준이 매우 명확했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큰 가능성을 지니고 있지만, 아직 세상으로부터 인지되지 못하고 평가받지 못한 사람’을 찾아내는 데 신경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당시 18세였던 네스터다.
정제 방법을 개선하거나 식견을 공유하면서 생산자가 고품질의 커피를 생산할 수 있을 때까지 함께 달리는 것이 카타(CATA)의 방식이다. 곧바로 성과로는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파트너는 필연적으로 ‘커피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싶다’라는 열의 있는 생산자로 좁혀져 간다.
카타(CATA)는 또 다른 사업 축으로 카우카(Cauca) 지역에 있는 아프리카계 콜롬비아인 생산자 200명과도 협력하여 일하고 있다. 2016년, 콜롬비아는 52년간 이어진 내전에 마침표를 찍었지만, 평화 합의 후에도 일부 무장세력은 활동을 계속하고 있어 해당 지역은 준군사조직의 허가 없이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상태이다.
카탈리나는 말한다. “그들이 사는 커뮤니티는 콜롬비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며, 여전히 사회로부터 ‘저임금 육체노동자’, ‘위험한 존재’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 문제를 주지시킨다는 의미에서도 극소량이더라도 그들로부터 커피를 사서 세상에 소개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의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피에르는 말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저희는 아직 직원이 적은 작은 회사이고, 리소스도 한정적이기 때문에 현재는 프로젝트를 중단했습니다. 연간 10~20봉지를 구매할 의향이 있는 파트너를 찾을 수 있다면 재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예에 국한되지 않고 저희는 거래 안정성을 제공할 수 있는 허브 역할도 하고 싶습니다. 항상 돈 때문에 골치를 썩여야 하고 생산 계획을 세울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으면 차분히 장기적인 계획을 짜거나 창의적인 발상을 하기가 어려워지니까요.”
열정에서 길은 열린다
카타(CATA)는 어떤 의미에서 커피에 대한 카탈리나의 관심과 열정에서 시작되었다.
콜롬비아에서 태어나 자란 카탈리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런던의 대학교에 진학했다.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세상의 문이 열린 것은 대학 근처에 있는 로스터리 카페에서 주최한 커핑 세션에 참여했을 때였다.
카탈리나는 그곳에서 마신 커피를 ‘그냥 커피’라고 밖에 생각하지 못했지만, 다른 참가자들은 ‘복숭아와 꿀의 맛’, ‘초콜릿과 차 같은 풍미’라고 표현했다. 언젠가 나도 이런 식으로 커피를 표현할 수 있게 되고 싶다, 각기 다른 개성과 맛의 차이를 느낄 수 있게 되고 싶다. 동경과도 비슷한 그 생각이 지금도 계속되는 여정의 시작이었다.
한 번은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했지만, 커피에 대한 생각은 끊어내기 어려웠고 정규직 바리스타로서 런던의 로스터에 취직했다. 그곳에서 한 단골손님과의 관계를 돈독히 해 나갔다. 콜롬비아 국기가 디자인된 그의 손목 밴드는 자신의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풍모로 볼 때 콜롬비아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대화를 나누어 보니 콜롬비아를 사랑하는 프랑스인 뮤지션이라는 사실과 그의 아버지도 콜롬비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그 단골손님이 피에르였다.
해외에서 거주하면 고향을 언급하는 것만 들어도 무조건 마음이 들뜨기 마련이다. 커피와 음악. 열정을 쏟는 대상은 다르지만, 그 온도감이 같다면 대화가 무르익는 것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교제를 시작했다.
런던에서 커피를 제공하는 팝업 스토어를 연 카탈리나의 가슴에는 피에르에게 작별을 고해야 한다는 생각이 싹트고 있었다.
커피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이상 바리스타로 머물고 싶지 않다. 대회에 나가 그 길의 프로로서 살아가는 방법과 로스팅 일을 하는 길도 있지만, 생산자와 가까운 곳에 있을 수 있는 고국으로 돌아가 창업을 해 커피 수출에 몸담는 것이 자신에게 맞는 삶의 방식이다. 그렇게 느낀 카탈리나는 어느 날 마음을 정하고 피에르에게 말했다.
“우리 관계는 여기까지일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피에르에게서는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라는 예상치 못한 반응이 돌아왔다. 피에르는 당시를 되돌아봤다.
“처음 콜롬비아에 온 2007년 이후 정기적으로 방문해 콘서트 등을 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친구도 생겼고 언젠가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줄곧 마음 한구석에 있었기 때문에 바랄 나위 없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게다가 카탈리나는 커피의 세계에 푹 빠지는 계기를 만들어준 사람이었죠.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자유로운 스페셜티 커피 업계는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창처럼 느껴졌습니다.”
인간관계에는 위도 아래도 없다
그렇다고 해도 두 사람은 수출 분야에 몸담은 적도 없고 비즈니스 경험과 노하우도 없었다. 그들이 가진 것은 올곧은 열정뿐이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멈춰 설 이유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겠지만, 두 사람을 단념시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콜롬비아의 북쪽에서 남쪽까지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두 사람은 같은 뜻을 가진 생산자들과 만났다. 불완전하고 미완성이어야 관여할 여지는 많아지는 것이다. 서로 부족한 것을 보완하듯 신뢰 관계는 쌓여 갔다.
그러는 사이에 한 건, 두 건……하고 유럽의 로스터들로부터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직 전문성은 충분하지 않았지만, 고객이 믿고 커피를 구매해 줬는데 그 기대를 저버리는 짓은 할 수 없다. 그런 생각이 두 사람의 억지력이 되었다. 카탈리나는 말한다.
“저희는 생산자를 돕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유럽에서 가져오고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커피의 세계는 축구 시합과 비슷합니다. 강호 클럽에 모이는 축구 선수들은 모두 실력으로 뽑힌 사람들이며 그들의 배경과 인종, 재산이 많고 적음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커피에 대한 열정이라는 공통점만 있으면 유럽 사람이든 아시아 사람이든 미국 사람이든 같은 ‘언어’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피 업계에는 마케팅 전략으로 서로 경쟁하는 곳이 있어 생산자의 일이 과소평가되고 있습니다. 소비자도 인지도와 브랜드 파워로 커피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생산자를 미화하거나 비극적으로 그리지 않고 그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카타(CATA)가 소비국 측, 생산국 측 양쪽에서 생산자와 로스터가 직접 만나 교류하는 기회를 만들어 온 것도 그러한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카탈리나는 말한다. “저희에게 이 비즈니스는 커피에 대한 열정을 키우면서 저희의 생활 수준을 높이고 삶에 평온을 얻기 위한 수단이자 그 열정을 아름다운 커피로 바꾸어 모두에게 공유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합니다.”
서로 보완하기 때문에 강해질 수 있다
카타(CATA)를 창업하기 전부터 사귀기 시작한 카탈리나와 피에르는 2022년에 결혼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일에 몰두하다 보니 사생활까지 신경을 쓰지 못해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최근에는 결혼반지를 도둑에게 도난당하는 트러블도 겪었지만, 2024년 연말(앞으로 2개월 후)까지는 결혼하자고 두 사람은 약속했다.
피에르는 말한다. “세상에는 부부가 함께 사업을 하지 않는 게 좋다는 통설이 있는데, 만약 어중간한 생각으로 하고 있다면 그 말이 맞을 것입니다. 너무 힘들어서 계속해 가는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같은 이상과 목표를 향해 서로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면 그것은 이제 훌륭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함께 사업을 하여 얻는 가장 큰 보상은 저희의 세계관을 반영한 환경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니까요.”
카탈리나는 말한다. “저희는 훌륭할 정도로 서로를 잘 보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즈니스 측면에서 말하자면 피에르는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하거나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전략을 세우는 것을 잘하고, 저는 아이디어를 내거나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을 잘합니다.
한편 일상생활에서는 예를 들어 파스타를 만든다고 치면 저는 클래식한 이탈리아 요리 레시피를 고수하는 반면에 피에르는 두부나 카레를 넣자는 식의 파격적인 제안을 합니다. 이러한 대조적인 조합이 좋은 화학 반응을 만들어내며 비즈니스를 하는 데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솔로로 활동하는 편이 살아나는 보컬도 있고, 밴드로 활동하는 편이 빛을 발하는 보컬도 있는 것처럼 서로의 개성이 블렌딩된다고 해서 그 매력이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커피 세계에서는 씨앗에서 컵에 이르는 끝없는 여정도 영향을 주어 방심하면 아주 쉽게 개성이 지워져 버리는 것 또한 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투명성이 확보된 커피는 ‘관련된 사람들의 열정과 진심의 블렌드’라는 가치를 계속 발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