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지 않으면, 길은 열린다
르완다 국내의 다른 퍼텐셜을 가진 커피 생산지역 10군데, 부룬디에 2군데의 워싱 스테이션을 소유·운영하고 소규모생산자가 만든 커피를 세계각국에 판매하는 Baho Coffee. 팀멤버는 생산자를 포함하여 10만명이상.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최적의 정제를 이해하고 실현하는데 도움도 준다.
창업자는루사티라 엠마누엘. 대학에서 엔지니어링이나 농촌개발, 농업비즈니스를 배운뒤 세계각지에 거점을 둔 대규모의 다국적 커피 수출회사에서 일하기를 12년「맛있는 커피를 만들지만 뒤쳐져있는 르완다의 소규모 농가에 힘이 되고 싶다」는 정열에 사로잡혀 2017년에 Baho Coffee를 설립했다.
엠마누엘과 처음으로 만난 것은 밀라노에서 개최된 커피전시회(World of Coffee)의 회장이었으나 그자리에 있는 전원을 비추는 태양과 같은 인품이 강하게 인상에 남아있다. 그 속에 커피생산자로서의 탁월한 실력과 심연같은 과거의 경험이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나중에 알게된다.
Baho는『강해져라』『포기하지마라』라는 의미를 가진 르완다어다. 그 말을 회사명에 사용한 배경에는 그자신이 절망의 밑바닥에서부터 기어올라온 역사가 있다. 엠마누엘은 커피 비즈니스를 통해서 무엇을 실현하고 싶은지 이야기를 들었다.
“가족”과 함께 르완다를 선전해서 판다
「1년 365일, 생산자의 파트너이고 싶다」라는 엠마누엘의 말은 듣기좋은 캐치프레이즈가 아니다. 그 증거로「비즈니스의 주춧돌은 생산자」라고 생각하는 Baho에서는 생산자와가까운 관계성을 구축하기 위해서 복수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생산자의 기술향상을 목표로 한 프로그램으로, 농업공학의 노하우를 가진 Baho팀 멤버가 정기적으로 생산자를 방문하여 보다좋은 재배방법을 제안한다.
거래하는 생산자를 소인원 단위로 그룹화하여 그룹마다 리더를 임명하는 것은 매니지먼트성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그룹내의 생산자를 돌아보고 그들이 안고 있는 과제를 찾아 농업공학자에게 보고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생산자와 함께 해결책을 찾아내 전체적인 질의 향상에 연결시킨다.
더해서 Baho에서는 생산자의 생활을 서포트하는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예를 들면 커피의 수확기에 앞서 수업료나 건강보험비용, 사업자금을 준비못하는 상황에 빠진 생산자가 도움을 청할때는 그들에게 자금 원조를 한다고 한다.
「생산자에게는 자신도 Baho의 일원이라고 느끼며 일에 몰두해주기를 바래서입니다. 좋은 가격에 커피가 팔렸을 때는 선물같은 감각으로 농가에게 인센티브를 지불하는 것도 그들이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인구 약1000만명의 나라·르완다에는 약50만채나 되는 소규모 커피 생산자가 있다고한다. 훌륭한 커피를 생산하는데도 불구하고, 국제 마켓에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서 거래가격이 낮게 되었던 것이 생산자가 직면하는 빈곤의 한요인이었다.
「우리들은 커피와 함께 르완다라는 나라를 선전하며 팔고 있습니다. 국내의 커피업계에서의 스페셜티 시장 점유율은 2010년경의 10%에서 50%까지 상승함과 동시에 르완다는『품질이 높은 커피 생산국』이라는 인지가 넓혀지고 있습니다.
나자신 이 변화를 추진하는 한사람으로 있고싶습니다. 장래에 모든 로스터나 임포터가 스페셜티 커피를 주문하고 싶을때 동아프리카에서 가장 최초로 선택되는 존재가 되는것이 Baho의 목표입니다」
르완다뿐만아니라 부룬디나 콩고의 커피에서 볼수있는 공통의 디펙트(결점두)로 잘 알려져 있는 것이 포테이토맛 디펙트이다. 생두를 로스팅했을 때, 생 감자같은 향이 스페셜티 커피의 섬세한 플레이버를 싹 지워버린다는 문제가 있다.
「우리들은 수확에서부터 수출까지 품질관리를 철저히 하므로 포테이토 디펙트가 나타나는 리스크를 대폭으로 경감할 수 있습니다. 만일 포테이토 디펙트가 문제시될 것 같으면 우리가 책임지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낼 것을 약속드립니다」
작은사람들을위해서
엠마누엘의 커피 인생은 2005년에 대학을 졸업한후 대규모 커피수출회사에 취직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워싱 스테이션의 매니저로 시작하여 오가닉 등의 인증이나 지속가능성을 관리하는 직으로. 순조롭게 승진을 해간 엠마누엘은 최종적으로는 37군데 (회사에서 15군데, 개인으로 22군데)의 워싱 스테이션을 매니지먼트하게 되었다.
회사에 대한 불만은 없었으나 엠마누엘은 언제나 가슴 깊은곳에 몹시 괴로운 생각을 안고 있었다. 그 회사에서 실현하는것과 자신의 완수하고 싶은 것에는 큰 격차가 있었던 것이다.
「나의 가족이나 친척에는 커피를 생산하는 사람이 많았으므로 나는 생산자의 아픔에 민감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생산자의 생활에 변화를 일으켜 행복을 보증할 수 있을까? 자문자답을 되풀이하는 끝에 도착한 것이 Baho의 비즈니스입니다」
2015년「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을 쫓지 않으면 안 됩니다」라고 상사에게 고하고 퇴직한 엠마누엘은 Baho를 설립할 준비를 시작했다. 작은 사람들을 위해서 작은 일을 거듭하고 싶다. 그런 생각이 엠마누엘의 마음속에는 숨쉬고 있었다.
「『강해져라』『포기하지 마라』라는 의미의 Baho는 대단히 감정이 담겨있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살기가 괴로운 친구나 비참한 생각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전혀 모르는 사람을 격려하는 데에 거는 말입니다」
가혹한운명
1978년 엠마누엘은 농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가족은 커피 이외에 바나나나 카사바, 감자, 콩을 재배했다. 형제는 5명. 집의 경제상황으로 먹는 것이나 입는 것도 만족하게 얻을 수 없었고 학비를 내는 것도 고생이었다.
그런 상황이 엠마누엘의 사명을 상기시켰는지도 모른다. 부지런한 엠마누엘은 귀찮은 작업을 강요당하는등, 알맞게 이용되는 일도 있었으나 어머니로부터의 칭찬 이상의 기쁨은 없었다.
엠마누엘의 어머니는 아프리카의 다른 가정과 마찬가지로 가사를 혼자 도맡고 있었다. 매일 어머니의 일을 도와주던 엠마누엘은 어머니와 깊은 유대로 맺어졌다. 귀에 듣기좋은 어머니의 찬사로 일의 피로등은 어딘가에 날아가 버렸다. 어떤 비밀이라도 말할 수 있는 어머니는 정말로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빈곤은 자칫하면 가정내에 대립을 야기하는 것이다. 그 상황이 평소에는 신사적이어서 아주 좋아했던 아버지가 다른 얼굴을 끌어낸 것이리라. 어느날 어머니가 아버지로부터 폭력을 당하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는 자신의 일부가 죽어버린 듯한 기분이 되었다. 어머니를 위로하며, 엠마누엘은「장래에는 어머니의 제일 서포터가 되겠다」고 맹세를 하였다.
그런 가운데 일가를 습격한 것이 1994년 제노사이드다. 투치족과 후투족의 대립이 격화하여 불과 100일 사이에 100만명 정도의 국민이 살해된 것이다. 그 속에 엠마누엘의 부모님과 막내 남동생도 포함되었다.
부모님의 사체를 찾았을 때 엠마누엘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졌다. 바로 옆에있는 강으로 들어가 부모님의 뒤를 쫓으려했으나 하늘은 그것을 용서하지 않았다. 아마도 누군가가 도운 모양이다. 그러나 남겨진 자로서 계속 사는것은 생지옥같이 생각되어 어쩔수가 없었다.
르완다에는 장남이 가족의 대표가 되야한다는 문화가 있다. 15살로 그 책임을 지게된 엠마누엘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레스토랑의 청소나 짐운반 등, 여러 일을 하게 되었다. 간신히 학교에는 다녔으나 교복은커녕, 신발을 씻을 비누조차 살 여유가 없었다.
19살에 중등학교(말하자면 고등학교)를 졸업한 엠마누엘은 대학에 진학하기 전에 중등학교의 교사로서 4년간 일한 시기가 있었다. 급료는 가족을 부양하는 생활비로 사라졌으나 안정된 수입원을 확보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꿈같은 생활」이었다. 4년간에 번 돈을 밑천으로 가족이 생활하기 위한 새로운 집을 500 달러로 지은것은, 23살? 때이다(월급은 약 25달러).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나는 2번 자살하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장남으로 가족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중압에 휩쓸렸습니다. 어느 쪽도 실패로 끝나서 살아남게 된것은 하느님이 지켜 준 덕분이지요. 고생이 끊이지 않는 생활속에서 나를 계속 지탱하게해준 것이 Baho라는 말이었습니다」
누군가를위해서산다
가혹한 나날을 극복해 온 엠마누엘의 말에는 특별한 힘이 있다「불타는 영혼」이라는 표현이 단순한 형용이 아니라 정말로 영혼이 불타고 있는 것 같은 에너지가 깃들어있는 것이다.
「내가 평소부터 생산자나 스태프에게 전하고 있는 것은 포기하지 말라는, 강해지라는 것입니다.2번이나 자살을 하려던 남자가 지금은 이만한 사업을 한다는 것을 격려로 삼길 바랍니다. 내가 일본이나 미국 사람들로부터 인터뷰를 받거나 유럽에 갈 수 있다니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나는 스태프에게 자신의 역사얘기 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Baho는 저입니다. 내가 시작한 사업이며 후원자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나 혼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생산자나 피커, 스태프, 로스터가 없으면 나의 이상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이것은 사슬입니다. 모두가 연결되어 Baho가 되는 것입니다.
심상치 않은 수의 국민이 생명을 잃은 제노사이드에 의해, 르완다의 역사는 한번 끊겨버린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현 정권덕분에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세계유수의 비즈니스 찬스가 넘치는 나라로서 해외로 부터의 투자도 모이고 있습니다.
가령 오늘 안되었다고 해도 내일은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Baho를 움직이게 하는것은 무슨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에너지입니다」
2009년에 결혼한 엠마누엘은 지금 3명의 자녀가 태어나서 행복한 생활을 보낸다. 예전처럼 먹는 것이나 옷에 곤란을 겪는 일도 없다. 그러나 한층더 행복을 갈망하는 헝그리정신은 지금도 엠마누엘을 앞을향해 가게한다.
「내가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것은 나의 일을 통해서 누군가가 음식이나 옷을 살 수 있게 된다고 알고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알고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인생은 자신 혼자의 인생이 아닙니다. 나는 나자신과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엠마누엘은 지금 사재를 털어서 생산자에게 500만주의 모종을 무료로 나누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커피를 통해 생산자의 생활을 좋게 도와주고싶고 생산자가 행복해지면 좋겠다는 바램에는 한점의 흐림도 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엠마누엘도 인간이다. 쉬고 싶을 때도 있는가 하면 편하게 지내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런 때는 언제나「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개한테 잡아먹히고 말아요」라는 어머니의 말이 뇌리를 스쳐간다.
「르완다에서 개는 단순한 동물입니다. 즉 개에게 먹힌다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이 되어버린다는 훈계입니다. 나자신 아직 완수하지 않은것이 산더미 같아서 더욱 더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가족이 제노사이드의 희생자가 되어 어머니와 주고받은 약속을 할 기회를 놓치고 나서 30년. 어머니의 제일 서포터가 되지못한 원통함이 생산자 한사람 한사람을 돌보며사랑하는 마음을 엠마누엘에게 주었다.